언젠가 이른바 민영화된 공기업으로 불리는 한 기업의 임원에게서 들은 농담이다. 그러나 그도 나도 그냥 우스갯소리로만 흘리진 않았다. 서로의 눈에 비친 자조의 항변을 보고 느꼈기 때문이다. 주식 지분만 정부에서 민간으로 넘어왔지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그는 말했다. 민영화된 공기업은 그냥 '민간기업'일 뿐이라고, 민간기업의 실제 주인은 정부가 아닌 바로 주주들이라고 나도 말했다. 그와 나의 이런 동의는 5년마다 주기적으로 현실세계에서 번번이 좌절된다. 정부 지분이 하나도 없는 몇몇 민영화된 공기업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권의 힘을 빌려 거대 민영화된 공기업의 낙하산 수장이 된 인물은 그에게 자리를 제공한 그 정치권력의 청탁 앞에서 나약할 수밖에 없다. 단호한 입장을 취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것이 인사 청탁이든 납품 청탁이든 그것을 거부하면 그는 배은망덕이 되는 까닭이다. 또한 우리 사회 관계망의 촘촘함이 청탁의 경제학을 발전시키는 데 일조한다. 청탁이 없더라도 알아서 먼저 기어야 한다. 여기서 하나의 낙하산은 또 다른 낙하산으로 복제된다. 그 계열사든 자회사든 줄줄이 낙하산 회사가 된다. 이 지점부터 민영화된 공기업의 경영은 정치와 복잡하게 동거한다.
정치와 엮이는 순간, 경영의 효율이나 경쟁력은 최적점을 상실한다. 정치 판세에 따라 부유하며 부침을 거듭할 수도 있다. 정치권의 이해를 배려해야 하고, 정치 역학구도 변화에 따라 줄을 서야 하는 게임에 들어서게 된다. 주지하다시피 대기업들의 경우 복잡한 이해관계자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들이 가장 우선순위를 둬야 할 지점은 시장이고 고객이며 경쟁환경이다. 여기에 최우선 순위 설정을 못하면 그 순간부터 기업은 비효율로 인한 부실의 길을 걷게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민영화된 공기업과 그냥 공기업의 비극은 정치적 요소가 기업경영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데 있다. 그리고 더욱 불행한 것은 노조도 그걸 알고 꼬투리를 잡는다. 그들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그 약점을 십분 활용한다.
민영화된 공기업은 이제 더 이상 공기업이 아니다. 그냥 민간기업이다. 민간기업을 정치권력의 전리품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낙하산 인사를 통해 수중에 품고 지배하려 한다면 해당 기업의 경영 효율과 지속 가능한 발전은 5년 주기의 정권 변화에 걸려 넘어질 것이다. 오히려 부실을 가속화하며 그것은 '관피아'의 적폐 못지않은 '정피아'의 적폐로 국민경제의 부담과 짐으로 계속 남을 것이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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