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이 3선 총리가 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가 이끄는 보수연합은 지난해 9월 총선에서 압승하고도 석 달이나 정부를 구성하지 못했다. 의석 수가 5개 부족한 탓이었다. 5명만 영입하면 단독 정부 구성도 가능했지만 메르켈 총리는 유혹을 과감히 뿌리쳤다. 대신 정공법으로 진보성향의 제1야당인 사회민주당(사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다. 독일 국민 다수가 이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독일 역사상 세 번째 좌우 대연정을 이뤄낼 수 있었다. 독일의 2차 좌우 대연정(2005~2009년)도 메르켈 총리의 작품이다.
이번 내각 구성에서 독일의 첫 여성 국방장관으로 기록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은 메르켈 2기 정부에 반기를 든 인물이었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는 그를 국방장관으로 기꺼이 기용했다.
메르켈은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으나 목사인 아버지 따라 동독으로 이주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베를린 과학 아카데미 물리화학 연구소에서 양자화학 분야 연구원으로 일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1989년 메르켈은 정치권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듬해 통일 독일을 이끈 헬무트 콜 총리의 신임 아래 여성청소년부 장관 등 여러 요직에 두루 앉았다.
그러나 콜 총리가 정치자금 스캔들에 휘말리자 메르켈은 자기의 정치적 '멘토'인 콜 총리에게 등 돌렸다. 콜 총리 퇴진을 관철시킨 메르켈은 2005년 연정 구성에도 성공해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됐다.
메르켈 총리가 글로벌 경제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집권 2기 때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재정난에 허덕이던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회원국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이때 메르켈 총리는 유럽의 경제위기 돌파를 주도하며 사실상 '유럽의 총리'로 떠올랐다.
메르켈 총리에게는 '철의 여인' 대처 총리에 빗댄 '게르만의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이 따라 다닌다. 메르켈 총리는 이탈리아ㆍ그리스 등 유로존 위기국들에 대한 구제금융 조건으로 혹독한 긴축재정부터 요구해 주변국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는 해외출장을 떠나는 날에도 남편의 아침까지 챙겨주는 등 소탈하고 가정적인 주부다.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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