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얘기를 접하면서 우리에게는 조용필이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환갑을 넘긴 나이지만 아직도 건재한 '오빠'로 남아 있는 그는 분명 한국 사회의 노익장의 한 상징과도 같다. 그러나 조용필이나 몇 안되는 고령의 음악인들은 우리 사회의 매우 예외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노인이 된다는 것이 슬픈 진짜 이유는 '노인'의 부정으로 비로소 '노인'이 긍정되는 현실이다. 근육과 알통으로 청춘을 모방해야, 몸에 쌓이는 노화를 필사코 거역해야, 아이들처럼 우스꽝스런 광대가 돼야 그들은 겨우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어서 했던 일을 나이 들어 알게 된다"는 말처럼 주름살과 쭈글쭈글한 피부, 물러진 뼈는 다른 많은 것, 잃은 것보다 더욱 귀한 것을 얻게 해 준다. 루 리드는 죽기 얼마 전 "청중들의 마음, 정신과 우주를 서로 연결시켜줄 수 있는 더 많은 노래를 쓰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 폭음과 마약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던 그가 이제 담담히 얘기하는 것처럼 노인이 된다는 것은 삶의 비밀에 대한 통찰과 지혜를 얻는 것이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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