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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마종기의 '이름 부르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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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검은 새 한 마리 나뭇가지에 앉아/막막한 소리로 거듭 울어대면/어느 틈에 비슷한 새 한 마리 날아와/시치미 떼고 옆 가지에 앉았다./가까이서 날개로 바람도 만들었다.//아직도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그 새가 언제부터인가 오지 않는다./아무리 이름 불러도 보이지 않는다./한적하고 가문 밤에는 잠꼬대 되어/같은 가지에서 자기 새를 찾는 새.//(……)이름까지 감추고 모두 혼자가 되었다./우리는 아직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마종기의 '이름 부르기' 중에서

■ 글자와 글자 사이, 행과 행 사이. 어둑어둑하고 컴컴하다. 관계의 소멸은 두 사람의 호명을 수수께끼처럼 어둠 속에 묻어놓았다. 그래서 묻는다. 우리는 아직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지저귀는 새들은 다른 새를 부를 줄 안다. 그런데 인간의 호명은, 무거운 편견과 꺼진 가로등, 부서진 마음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그까짓 것들, 깜박 잊어버린다면 다시 서로 다정한 사이로 돌아갈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세상에는 그렇게 낙천적으로 되는 법이 별로 없다. 처음에 새의 목소리로 다른 새를 부를 때는, 아무 소리라도 다 정겹고 기특하게 들렸다. 그러나, 호명에 끼어드는 수많은 잡생각과 잡음(雜音)들이, 그 이름의 공기를 바꿔놓는다. 어쩌면 헤어진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현실 속의 누군가를 부르는 게 아니라, 오래 전에 흘러간, 기억 속의 첫 이름만을 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호명의 착오들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어둠 속에 혼선처럼 오간다.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엉터리 발신(發信)이여.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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