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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칼럼]빌 회장, 회사를 위해 물러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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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업계 종사자라면 '한국에서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나올 수 없는 까닭'을 100가지도 넘게 댈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창업을 포기하고 취업을 택했다면? 한국사회에서는 대학 중퇴의 학력부터 발목을 잡았을 것이다. 타계한 잡스는 별개로 하고, 게이츠는 부차장급 간부 정도 하지 않았을까. 직장운이 좋았다면 1955년 10월28일생인 빌 게이츠는 오늘 생일 날 58세 정년을 꽉 채우고 회사 문을 나설지도 모른다.

만약에, 게이츠가 한국에서 사업에 성공해 컴퓨터 황제로 등극하고 계열사 수십개를 거느리면서 일등 갑부에 올랐다면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경영을 총람하고, 청와대 오찬에도 참석하며, 아들ㆍ딸 후계자 만들기에 고심하는 것이 대체적인 한국 대기업 오너상이다.
요즘에는 씁쓸하고 안타까운 모습이 추가됐다. 세무조사를 받고, 검찰에 불려가며, 회사의 몰락으로 퇴장하는 오너들이다.

실존의 빌 게이츠는 '한국형 게이츠'와 너무나 다르다. 그는 지난 봄 청와대를 찾았을 때 바지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박근혜 대통령과 악수해 구설수에 올랐다. 그런 그가 재벌 오너의 일원으로 청와대 식탁에서 '창조경제에 매진하겠다'고 엄숙하게 말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웃음이 터진다.

게이츠는 2000년 마이크로소프트(MS)의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45세 때다. 건강이나 경영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자선사업에 진력하기 위해서였다. 자녀들에게 회사를 물려줄 준비는 돼 있는지 걱정스럽다면 그의 육성을 들어보기 바란다. "아이들은 내가 가진 재산 가운데 조금씩만 갖게 될 것이다. 이는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2011년 영국 데일리 메일 인터뷰)
600억달러의 자산가인 게이츠는 "재산은 물려주는 게 아니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라 말했고 세 명의 자식에게 "1000만달러(105억원, 전 재산의 0.017%)씩 물려줄 것"이라 공언해왔다.

그런 게이츠에게 최근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MS의 일부 대주주가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창업주이자 최대 개인지분을 보유한 오너다. 경영 일선에서 떠났다. 그런데도 완전 퇴진을 요구한 것이다. 현 CEO 스티브 발머의 사의표명이 계기다. 신임 CEO가 혁신을 일으키고 신경영 전략을 펼치는 데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게 이유다. 오너십의 위기에 빠진 한국의 현실을 보면서 '성공한 창업 오너의 퇴진'을 외치는 기업 풍토가 생경한 것은 나뿐일까.

한국의 재벌에는 빛과 그늘이 있다. 압축 성장에는 기업의 역할이 컸다. 기업인들은 맨땅에서 신화를 일구었다. 열정과 도전의식이 넘쳤다. 현대 창업주 정주영은 백사장뿐인 조선소에서 없는 배를 팔아 오늘의 현대중공업으로 키웠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은 청와대까지 반대한 반도체사업에 뛰어들어 지금의 삼성전자를 일궜다.

다른 한편으로는 독선과 허세, 취미를 사업화하는 식의 사유화로 기업을 망치고 경제에 그늘을 남긴 사례도 숱하다. 세상은 달라졌다. 그런데도 과거의 영광과 낡은 유물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을 흔들곤 한다.

최근 위기에 처한 그룹의 오너 한 사람, 오래전 만났을 때의 말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나보다 회사를 더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 물러나겠다." 그는 평생 물러날 일이 없을 것이다. 또 다른 오너는 사외이사 대부분을 고교 친구와 선후배로 꾸렸다. 동창회 모임 같은 이사회에서 쓴 소리 한마디 나올 수 있을까. '물러나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빌 게이츠, 그런 말이 나오는 기업이 부럽다. pm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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