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절벽사회라는 개념은 용어상 종말 혹은 위기 담론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사회 진단에 그치지 않고, 절벽을 어떻게 허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펼치고 있다. 저자인 고재학은 언론인 출신답게 현장과 주변에서 겪은 사례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또한 문제가 발생한 근원 및 각종 통계 등을 더해 절망의 깊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절벽의 모습은 여러 형태를 띠고 각 분야에서 수많은 몰락을 예고한다. 비단 예고만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으며, 몰락을 향해 내몰리고 있다. 책에서 제시한 절벽을 보자. 젊은이들은 결혼하지 않으며, 결혼한다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다. 평생직장 개념은 사라졌다. 고용 안정이 사라져 '사오정'(45세가 정년이라는 말을 빗댄 용어)으로 내몰린 직장인은 야근을 밥 먹듯 한다. 월급이 200만원 이하인 사람들이 태반인 판국에 수억, 수십억원을 받는 대기업 임원의 승진 잔치는 늘상 요란하다.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외환 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며, 중산층 비율은 최근 6년새 5% 포인트 이상 줄었다. 대기업의 '독점'은 더욱 심해졌다. 치킨, 피자, 순대 등 서민 자영업종에까지 몰려들었다. 때문에 창업 인구의 20%가 1년 이내에 문을 닫는 형편이다. 이와 함께 수십만 가구가 하우스푸어로 전락, 빚더미 위에서 생존을 영위하고 있으며 가계 빚에 시달리는 약탈적 관행은 계속해서 되풀이되고 있다. 이같은 위험은 결국 모두 '돈'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향후 경제 전망치는 더욱 어둡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오는 2020년 2.8%, 2030년 1.7%로 예상한다. 이런 수치는 사회안전망과 따뜻한 자본주의를 만들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개혁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하게 일러 준다. 그 해법은 절벽에 대항하고 시스템을 고치려는 주체들, 그 주체들의 결정적인 행동이 수반돼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세상은 여러 절벽과 함께 기상 이변, 원자재 및 식량 가격 상승, 에너지 수급 불투명 등 다양한 변수가 더해졌다. 이제 지금까지의 경제 질서가 사실상 무의미할 수도 있다. 물론 모두의 번영을 기초로 경제가 다시 펼쳐진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재벌 중심에서 중소기업 중심으로 개편하고, 사회적 기업, 종업원 소유기업, 협동조합 등 다양한 형태가 공존하고 기업 안에서도 직원들에게 대한 이해와 의사 반영이 더욱 증대될 경우 적어도 갈등은 예상보다 줄일 수 있다. 여기에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이루기 위한 사회적 합의, 공공악재의 효율적인 통제, 삶의 여건을 바라보는 유연한 사고, 국가와 관료사회 및 입법정치의 변화, 노사정 관계 개편, 국민 참여 확대 및 합의 통제 등 수많은 선결조건을 얘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모든 경제 주체들이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프랑스 사회운동가인 스테판 에셀이 설파한 '공감, 분노, 행동'의 메시지가 절실하다. 그것이 오늘날 절벽사회를 이겨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유효한 철학으로 다가온다. <'절벽사회'/고재학 지음/21세기북스 출간/값 1만5000원>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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