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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 - 7장 총소리(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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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 - 7장 총소리(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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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병....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서 옛날부터 사랑을 열병이라고 부르기도 하지 않았던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한 김광석의 노랫말도 떠올랐다.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도 그랬을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지독한 병이었고, 무서운 집념과 광기였을 것이다. 사랑이란 바이러스는 영혼 속으로 침투하여 때때로 히스클리프처럼 미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죽음을 넘어가게 하기도 한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고 노래하며 사랑하는 여자와 현해탄에 몸을 던져 죽은 일제시대의 소위 정사(情死)에 관한 전설적인 이야기도 그런 배경에서 나온 것일 터이다.

하지만 예전엔 제법 그렇게 흔해 빠지기도 했던 그런 지독한 순애보적 사랑도 이젠 추억 속의 낡은 뽕짝이 되어 흘러간 지 오래였다. 이젠 누구도 그런 사랑에 박수를 보내지도, 감동도 하지 않는다. 내 사랑 불사조를 부르며 우는 친구는 한심한 놈으로 치부되기 마련이었다. 모든 것은 드라이하게, 드라이하게 현실에 충실하기, 그것이 요즘의 사랑법이었다.
그러면 하림 자신은 어떤가?
솔직히 말하자면 이것도 아니었고, 저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혜경이 아프리카로 가겠다고 하자,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어정쩡한 포즈만 잡고 있다가 하소연이 나타나자 그녀에게도 마음의 귀퉁이 조금을 잘라 내어주었는지 모른다. 자기가 생각해도 한심했다. 차라리 히스클리프의 지독한 집념이든, 아니면 요즘 아이들처럼 드라이해지든 둘 중의 하나라도 했으면 싶었다.
하림이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어저께 밤 사내가 개를 쏘아죽였던 지점에 이르렀다. 순간, 하림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등줄기에 자신도 모르게 싸한 기운이 흘러가는 것 같았다.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 어둠 속에서 악귀의 얼굴을 한 사내가 죽은 개를 질질 끌고 가는 모습이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뒤를 돌아보니 그때까지 남경희는 남경희 대로 무슨 생각에 잠겨있는지 아무런 것도 모르는 양 몇 걸음 뒤에서 묵묵히 따라오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될 것이었다. 여전히 바람은 거칠게 불고 있었다.
“괜찮아요?”
하림은 아무 말이라도 해야될 것 같아서 떠오르는 대로 말했다. 자기에게 묻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예.”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가 대답했다.
“조심하세요.”
하림은 쓸모없는 말인줄 알면서 공연히 덧붙였다.
그녀에게 차마 어젯밤 자기가 봤던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바로 이 부근이 바로 그 자리라고는 말 할 수가 없었다. 듣는 그녀도 소스라치며 무서워하겠지만 하는 자기도 무서울 것이었다. 차라리 그냥 가슴에 꾹꾹 눌러둔 채 말하지 않는 편이 더 좋을지 몰랐다.
그런 하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경희가 태평스런 어조로 말했다.
“장선생님! 도와주실거죠?”
“예?”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하고 하림이 돌아보는데,
“기도원 짓는 거 말이예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걸어오는 동안 시종 그 생각만 하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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