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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서정춘의 '허시(虛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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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의 문장은/타고남은 서까래다/풍장이 남긴 뼈다귀다
이것저것 다잡아/상한 몸 엮었더니/서서 죽은 인골 탑!!

서정춘의 '허시(虛詩)'

■ 허실생백(虛室生白)만큼, 비움의 효용을 간명하게 정리한 말도 드물 것이다. 방에 들어찬 것들을 비우면 여백이 생겨난다. 우린 방을 넓게 쓰고자 하는 욕망과 방에 많은 것을 들여놓고 싶은 욕망을 함께 실현하려 한다. 그러려니, 방이 자꾸 커진다. 방이 커질수록 들여놓고 싶은 물건들이 더 빨리 늘어나 늘 비좁다. 이 문제를 고민하는 세상의 바보에게 장자는 말한다. 물건을 버려, 그러면 방이 넓어지잖아. 시를 이루는 문자들도, 욕심이 생기는 건 마찬가지다. 번다한 문장과 휘황한 기교로 채우면서 시의 방도 커진다. 방은 크지만 여운(餘韻)이 있을 자리가 없으니 답답하다. 저것들을 버려야 하건만 시인 또한 이미 들인 가재도구에 애착이 생겨 방만 더욱 늘여 놓는다. 이 병폐를 저 시인은 뒤집어 보인다. 큰 집이었다고 생각했던 시, 그 까짓 것 다 태워 없애니 시커먼 서까래 한 덩어리가 남았다. 큰 삶이었다고 생각했던 시, 그거 풍장하고 나니 뼈다귀 몇만 남았다. 시를 사람처럼 만들어 보려고 엮었더니 뼛조각들이 서 있는 꼴이다. 집이었던 것, 삶이었던 것, 사람이라 여겼던 것. 비워 놓고 보면 그 본질은 이 모양이니, 번들거리던 것들을 다 비워 낸 나머지가 후련하게 누리는 것이 시가 아니겠는가. 실(室)이 시가 아니고, 백(白ㆍ빈 자리)이 시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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