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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송재학의 '단항리 해안'

최종수정 2013.07.23 11:11 기사입력 2013.07.2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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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항리 해안, 기억이 끌고온/섬이 도착했다/인기척도 노도 없다/눈감은 머리만 도착했다/미농지 얇은 섬은 아직 치자꽃 머금고 있다/슬픔이 없는 눈물이 있듯/치자나무 바래어 낮달이 쉬이 머물렀다/초분의 시렁이 실린 섬이기에/흑백 풍화가 아직 진행 중이다/코발트 입김을 토해내는 단항리 바다 위/꽃받침 없는 꽃봉우리/아직 피지 못한 꽃잎의 섬이 있다/오늘 나의 헛묘를 얻었다/눈물 글썽이는 바다,/왼종일 바다는 진흙 연못처럼 고요하다

■ 많이 사랑한다 하면 될 것을, 왜 죽도록 사랑한다고 말할까. 행복과 열정과 기쁨의 극한 표현에 '죽음'이 가끔 등장하는 것은 왜일까. 사람이 가진 것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이 시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내게 부여된 삶의 남은 시간을 기꺼이 내주고 싶을 만큼 가치 있는 무엇에 대한 경탄일 것이다. 이 시인은 남해 창선면의 단항리 해안에서 기꺼이 눈감아도 좋을 자리를 보았다. 여기쯤이면 내 생의 뒷날을 쉬게 해도 좋으리라. 그게 '헛묘'라는 말에 섞여 함께 새 나온 황홀한 신음소리다. 송재학이 묘사한 저 섬 하나가 보고 싶어, 당장 남해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인기척도 노도 없이 당도해 있는 섬. 달큰한 7월의 치자꽃 향기가 감도는 섬. 바랜 붓질같이 희미한데 슬픔 없는 눈물처럼 낮달 하나 떴다. 코발트 푸른 입김 위에 피지 못한 꽃잎으로 갇힌 섬을 들여다보니, 문득 저 고요한 것이 나의 죽음과도 닮았다. 초분(草墳)의 시렁과 헛묘는, 내 죽음까지 들여놓을 묵묵한 공간이다. 단항리 해안에 가서야, 내가 평생 섬이었으며 죽어서 이쯤에서 저렇게 섬 하나로 떠 있겠구나 하는 걸 깨닫는 것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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