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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7장 총소리(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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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7장 총소리(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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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총소리였다. 불안과 공포가 온몸을 엄습했다. 하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귀를 기울였지만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잘못 들은 것일까. 아니다. 분명히 총소리였다. 하림은 잠바를 걸친 다음 마당으로 뛰어 나갔다. 그리고 총소리가 들렸던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어둑한 하늘에선 아직 푸른 낮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총소리가 난 쪽은 그저께 산책을 나갔던 저수지 방죽 저쪽이었다.

어떻게 할까. 그러나 망설임은 잠시, 하림은 곧 더 이상 호기심을 견디지 못하고 마당에서 던져두었던 막대기를 집어들고 잰 걸음으로 소리가 났던 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불안과 공포가 등짝을 타고 서늘하게 타고 내렸지만 무언가가 하림의 손을 낚궈 채 잡아끌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낮에 내렸던 비 때문에 길은 질척했고, 길가의 풀은 젖어있었다. 어디선가 멀리서 컹컹컹, 개 짓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가지 않아 곧 저수지의 잡목 숲이 나타났다. 이어 잡목 숲 사이로 번쩍하고 저수지의 수면이 비쳤다. 마지막 남은 저녁 하늘 빛을 빨아들인 채 누워있는 저수지는 커다란 유리창처럼 보였다. 물이랑이 잔잔히 이는 저녁 무렵의 저수지는 괴이할 정도의 정적으로 덮혀 있었다. 한가롭게 헤엄쳐 다니던 물오리떼들도 보이지 않았다.
하림은 방죽 아래로 난 길을 따라 반 쯤 몸을 가린 채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를 갔을까. 저수지의 끝 배수구 부근 다리에 이르렀을 때였다. 지난 번 산책 나왔을 때 하림이 서서 다리 너머로 공사장과 이층집을 보았던 바로 그 지점 부근이었다. 하림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버렸다. 다리 건너편 어둑한 풍경 속에 사람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림은 얼른 잡목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림자는 어스름 속에서 부산히 움직이고 있었다. 키가 큰 사내의 그림자였다. 사내는 무언가 무거운 것을 질질 끌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엔 긴 작대기 같은 것을 들고 있었는데, 하림은 직감적으로 그게 엽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슴이 쿵쾅쿵쾅 세차게 뛰었다.
‘그 사내다....!’
순간 속으로 외쳤다.
하림은 제 눈을 의심하며 다시 한번 그쪽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하지만 어둠 속의 사내는 분명히 얼마 전 오토바이를 타고 화실 마당 펌프를 수리하러 왔던 염소 수염, 바로 그 사내였다. 비록 어둑하긴 했지만 틀림없었다. 막대기를 쥔 하림의 손아귀가 자기도 모르게 와들와들 떨렸다.

‘그가.... 왜....?’
하림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사내는 그런 하림의 존재 따위엔 관심이 없다는 듯 무거운 것을 한참동안 질질 끌고 가더니 이층집 영감의 울타리 근처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곤 잠시 주위를 살피듯 한번 돌아보고는 무거운 것을 그곳에 던져두고, 곧 돌아서서 공사장 사무실이 있는 불 꺼진 컨테이너 박스 뒤로 사라졌다.
곧이어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투다다다, 거리는 오토바이 소리는 어둠을 흔들어놓고는 꽁무니의 빨간 불빛과 함께 금세 사라져버렸다. 너무나 대담했고, 너무나 빨랐다.

그가 떠나고나자 사방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쥐 죽은 듯한 고요 속에 빠져 들었다. 하림은 여전히 잡목 뒤에서 나오지 못한 채 한동안 그대로 얼어붙은 사람처럼 앉아있었다. 어슬어슬 몸이 떨려왔다. 청동빛 어스름이 가시자 먹빛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어느새 저수지 저편 하늘에서 초승달이 파랗게 빛을 토하고 있었다.

글. 김영현 / 그림.박건웅



김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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