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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규제 1년](중)"마트와 거래가 끊겨 당장 뭘 먹고 살지 막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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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규제 1년, 누구를 위한 족쇄였나
-유통사 납품 中企, 마트와 거래 끊겨 매출 반토막
-2·3차 협력업체, 전체 농어민 당장 살길 막막


[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전국 농사꾼들이 모두 쉬는 날이 있어요. 농사꾼들은 비가오나 눈이오나 365일 논밭에 나가 살잖아요. 그런데 최근에 휴일이 정해졌어요. 언제인지 아세요?" 정답은 '대형마트가 쉬는 둘째, 넷째 일요일'이란다.
이마트 에 상추, 배추 등의 엽채료를 납품하는 모업체의 김영걸 이사는 "엽채류는 수확한지 2~3일만 지나도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바로바로 소진되지 않으면 전량 폐기된다"며 "마트가 쉬는 주에는 농민들도 다 손을 놓는다"고 쓴 농담을 던졌다.

극렬한 반대속에서도 전통시장의 소상공인들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강행됐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시행 1여년만에 파행을 겪고 있다. 500만 대형유통사 납품농어민, 중소기업, 임대상인이 대규모 조직을 만드는 한편 유통법을 지지하는 정치인, 지자체장을 대상으로 낙선운동까지 벌이겠다고 나서 유통법 개정안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유통악법 철폐 농어민ㆍ중소기업ㆍ영세임대상인 생존대책투쟁위원회는 28일 서울역 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규제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하루종일 내린 궂은 장대비에도 집회에 참가한 경찰 추산 3000여명에 달하는 대형마트 납품업체 농어민들과 중소업체 직원들은 우산조차 받치지 않고 우비와 붉은 띠만 두른 채 '유통법철폐'를 외쳤다.

부산에서 수산물 생산ㆍ가공업체를 운영하는 이모(40)씨는 "회사 운영 10년째인데 아무리 경제위기다 불황이다 해도 지금처럼 어려운 적은 없었다"면서 "생산량의 100%를 대형마트에 납품하고 있는데 월2회 마트가 쉬게 되면서 매출이 20% 감소했다"고 한탄했다. 그는 "토요일날 납품했던 물량이 100이었다면 지금은 10에 불과해 90%나 줄었다"며 "남은 물량을 소진할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에 어획량 자체를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매출 감소는 직원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용인에서 상추, 부추 등의 엽채류를 재배해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중소업체 구미라(51) 대표는 "월 2회 강제휴무가 시행되고 영업시간을 규제받은 이후 직원 16명 중 8명을 잘랐다. 매출이 1/3 이상 줄어 도저히 직원들을 떠안고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달에 3억원에 달하는 물량이 대형마트에 들어갔는데 1억2000만원 수준으로 반토막 이상 줄었다"고 덧붙였다.

여수에 사무실을 둔 수산물 생산ㆍ가공업체의 직원 조모(37)씨는 "직원이 15명 있는데 지난해 2명 자연 결원이 생긴 뒤 추가인원을 뽑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감이 없어서 2명이 하던 일을 1명이 도맡아해도 될 정도"라면서 "아직까지는 자연퇴사를 제외하고 인력감축은 없었는데 계속 이 상태가 유지된다면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다"고 고개를 저었다.

대형마트 수산협력사 김모 전무는 "매출이 30% 줄어 현재 100명 되는 생산인력과 배송인력이 다 필요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상태로는 몇 달 못가서 문 닫게 된다. 결국 인력감축이 불가피한데 직원 1명을 자르면 이에 딸린 3~4명의 가족들까지 고통을 받게 되는 것 아니냐"면서 "정부가 '기업의 고용창출'을 얘기하는데 전혀 앞뒤가 안맞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코웃음이 난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문제는 1차 납품업체에만 그치지 않고 2,3차 협력업체와 OEM업체들에게까지 피해가 연쇄적으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3사에 모두 입점해있는 한 속옷브랜드 업체는 최근 매출이 전년대비 20~30% 가량 줄었다. 직원 500여명 규모의 이 업체는 연매출 2000억원에 달할만큼 덩치가 크지만 대형마트 월2회 휴무제로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 업체 하청업체들은 상황이 더욱 어렵다.

업체 직원 임모(38)씨는 "문제는 OEM업체들까지 피해가 간다는 것"이라며 "2차 협력업체에 일감을 줘야하는데 물량이 소진되지 않고 재고가 남으니 발주할 물량이 없다. 이들 업체들은 규모가 영세해 대기업처럼 버틸 재간도 없다"며 혀를 찼다.

시장의 가격기능을 흐리는 것도 새로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대형마트에서 소화하던 물량이 재고로 쌓이면 전통시장에 쏟아지게 되는데 이렇게 한꺼번에 나온 물량 때문에 제품가격이 반토막 나 결국 농어민들이 제값을 받지 못하고 떨이로 내다파는 구조가 된다는 설명이다.

"마트가 문을 닫으면 그날은 물량을 가락시장 등으로 보내는데 우리만 가락시장에 내다 팔겠는가. 마트가 쉬는 날은 모든 산지 농민들이 가락시장으로 몰려들어 판다"
채소납품업체 김모씨는 "이날은 가격이 헐값이 돼 산지 인건비도 안 나온다"면서 "500원에 팔아야할 것을 300원에 후려치게 되니 가락시장 상인들도 마트 쉬는 날을 무서워한다"고 말했다.

이대영 생존대책투쟁위원회 위원장은 "유통악법으로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농어민 등 피해가 연간 3조원에 달한다"며 "적자와 자금압박으로 연쇄도산의 벼랑 끝에 몰려있다"고 강조했다.

연합회는 유통법을 지지하는 정치인과 지자체장을 대상으로 낙선운동을 펼치는 한편 다음달 26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1만명 규모의 대규모 집회를 열 예정이다.



오주연 기자 moon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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