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조세형평성 실현과 복지확대 정책의 세원 마련에 목적을 둔 이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은 뜨거운 찬반 논란에 빠지고 있다. 개인사업자, 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세금조사와 상속ㆍ증여, 재산 은닉에 대한 과세 강경책이 영세사업자와 서민에게까지 연쇄적인 세금부담을 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우리나라 세입구조는 크게 부가가치세 28.6%, 소득세 19.1%, 법인세 18.6%로 구성돼 있다. 특소세, 상속세, 교통세, 관세, 교육세 등은 3% 내외다. 따라서 지하경제 양성화란 명목으로 세율을 올리지 않고 영세업자와 서민을 보호하며 큰 반발 없이 쉽게 세원을 확보할 수 있는 대상은 고액소득자 다음으로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대선의 핫이슈는 경제민주화였다. 선거 이후에는 잠잠해졌지만 지하경제 양성화도 경제민주화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구분 없는 기업회계 투명성 제고를 통해 지하경제 양성화를 실질적으로 실현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기업 규모가 작으면 외부감사를 면제해 줘야 한다는 인식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영세기업의 경영활동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경영의 투명성은 기업의 규모에 관계없이 제3자가 봐도 경영활동을 손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업의 모든 거래를 회계기준에 맞게 처리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선진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작은 기업들부터 투명경영을 소중한 가치로 생각하고 회계시스템을 구축해 성실한 납세기업으로 성장해 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기업이 외형적으로 성장해 가면서 겪는 성장통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지만 이를 최소화하는 수단의 하나가 바로 경영과 회계의 투명성이라는 점을 우리 모두가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본질적으로 독립적인 외부 감사인에 의한 견제와 확인을 필요로 한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기업회계 시스템을 선진화해 기업회계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켜 왔다. 그렇지만 사회 전 영역에서 경영의 투명성과 회계의 신뢰성이 같이 구축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면 비영리법인ㆍ공익단체ㆍ서민금융기관 중 상당수가 회계 투명성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국공인회계사회에서는 '공인회계사 장기발전방안'을 발표하며 우리나라 회계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6가지 추진과제를 제시했다. 6가지 추진과제 중 공공부문 및 중소기업의 회계 투명성 확대 등의 실천방안은 기업의 지하경제 양성화와 관련해 주목할 만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가 스스로 기업회계 투명성을 높여 자연스럽게 지하경제가 양성화되는 방안을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 '투명경영이 조세정의를 앞당길 수 있다'는 믿음을 통해 조세확보에 대한 조급함을 억제하고 장기적인 안목 안에서 국가정책이 추진되기를 희망한다.
김일섭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