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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강남 재건축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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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창익 기자]200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재건축 아파트는 성취와 좌절, 환희와 회한이 뒤범벅된 애증의 대상이다.

재건축, 특히 강남 재건축 아파트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기존의 신분질서와 부의지도를 송두리째 뒤바꿔 놓았다.
친구에게 빌려준 돈 2억원을 받지 못해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85㎡를 대물로 받았던 한 지인은 2000년대 중반 아파트 시세가 6억5000만원까지 치솟자 온가족을 데리고 사비로 1년간 미국 연수를 다녀왔다. 그가 1억5000만원을 쓰고 돌아온 1년 뒤 그 아파트 가격은 3억원이 더 뛰었다.

결혼을 하며 빚을 내 도곡동 주공아파트(지금의 도곡 렉슬)를 6억원에 샀던 한 친구는 재건축후 아파트값이 20억원을 호가하자 최고급 외제차를 뽑고, 고급 술집에 연일 친구들을 불렀다.

‘월급쟁이들이 무슨 돈이 있겠느냐’며 술값 내기를 도맡아 했던 변호사·의사 등 이른바 '사(士)'자 돌림 친구들도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가진 친구 앞에서는 꼬리를 내려야 했다. 급여 소득의 많고 적음으로 정해졌던 동년배 커뮤니티의 신분질서는 재건축 아파트 소유 여부에 따라 이런 식으로 새롭게 정립됐다.
부의지도는 살고 있는 지역에 따라 급속히 재편됐다. 지방에서 개업한 한 산부인과 의사 친구는 결혼하며 장인이 사준 2억원짜리 아파트를 더 이상 자랑할 수 없게 됐다. 70% 가까이 대출을 얻어 압구정동에 2억원짜리 재건축을 샀던 다른 친구는 갈아타기를 반복하며 지금은 20억원이 넘는 부동산을 가진 부자가 돼 있는 반면 의사 친구의 집값은 지금도 10년전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억’ 소리를 들어도 감흥이 없지만 10년전만해도 1억원은 서민들이 내집 장만을 위해 모아야 하는 목표 저축액이었다. 10억원이 강남 아파트 한 채값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밀리어네어(백만장자)로 부르는 거부들의 재산 기준이 바로 10억원(1밀리언 달러)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강남 재건축 소유에서 소외된 대다수 서민들은 이같은 시대를 살아내면서 이른바 멘탈붕괴를 겪었다. 3년간 열심히 모았던 2000만원짜리 적금통장을 보면서도 미소가 아니라 쓴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순간 거액의 부를 가져다 준 재건축 급행열차를 타지 못한 서민들 중엔 이를 만회하려 주식시장에 베팅했다 가진 재산마저 날리는 사례도 많이 목격했다.

10년 뒤 지금. 재건축 시장은 싸늘히 냉각됐다. 시세가 분양가를 밑도는 강남 재건축 입주 아파트가 나오고, 대표적인 강남 아파트 재건축이 나서는 시공사가 없어 번번히 무산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40년 가까이 된 낡은 아파트 단지가 즐비한 여의도조차 재건축이 답보상태에 빠지며 인테리어 업체들이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그냥 고쳐서 쓰자는 집이 늘면서다.

좀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지난 10년간 강남 재건축을 중심으로 들썩였던 우리 부동산 시장의 모습은 인터넷 뉴스 검색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경제사의 한 페이지로 남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아오며 왜곡된 우리들의 인식 구조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현재 진행형으로 남을 것 같다. 재건축 아파트가 더이상 부자가 되는 급행열차는 아닐지라도 2000만원짜리 적금 통장에서 다시 희열을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김창익 기자 win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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