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누적돼온,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쌓여갈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관리하고 처리할 것인가는 원자력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상관없이 이 땅에 사는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다. 정부가 올해 안에 사용후핵연료 관리 대책을 수립하기 위한 공론화 과정에 착수할 예정인 가운데 우리 사회도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풀기 위한 책임 있는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지금까지 원자력 선진국들이 개발한 이른바 재처리 기술들이 모두 사용후핵연료에서 핵무기 재료가 되는 플루토늄만 따로 분리해내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파이로프로세싱은 플루토늄만 따로 빼내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도록 기술과 공정이 설계돼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핵확산 우려가 없는 기술이어서 '재처리'가 아닌 '재활용'이라는 새로운 범주로 구분되고 있다.
파이로프로세싱을 통해 사용후핵연료에서 추출한 물질을 소듐냉각고속로의 연료로 사용하면 사용후핵연료를 모두 폐기물로 영구 처분할 때보다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 면적이 100분의 1로 줄어든다. 고준위 폐기물보다 독성이 훨씬 약한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장 부지 마련에 엄청난 사회적 진통을 겪었던 과거의 경험을 되새겨보면 국토 면적이 좁고 인구밀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처분장 면적 감소는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의 절감을 의미한다.
그러나 중간저장을 선택하더라도 결국 사용후핵연료의 궁극적 관리 방안이 필요하다. 사용후핵연료에 포함된 160여종의 원소들 중 일부는 방사성 독성이 천연 우라늄 상태로 감소하는 데 수십만 년이나 걸리는 만큼 중간저장 이후에 활용할 수 있는 기술적 대안 마련을 위해 연구진을 투입하고 연구비를 투자하는 일은 지극히 당연할 뿐 아니라 원자력 발전으로 전체 국가 전력소비의 30% 넘게 충당하는 국가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최종 선택권은 국민이 쥐고 있다. 국민이 최적의 사용후핵연료 관리 방안을 선택할 수 있으려면 마땅한 기술적 방안들이 마련돼야 함은 물론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는 까다로운 문제지만 우리 국민들이 현명한 선택을 해 국민 다수의 행복과 국익을 지켜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박성원 한국원자력연구원 전략사업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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