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의 '일몰'
■ 고은의 시를 읽노라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단순한 것이 의미심장한 것으로 바뀌면서 죽었던 심장이 뛴다. 붉게 내려앉는 어둠을 보면서 시인은 묻는다. "이 세상은 단 한번도 태어나지 말아야 할 세상인가?" 죽음이란 탄생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태어나지도 않은 목숨이란 죽을 기회도 없지 않은가. 모든 노을은 터져나오던 일출을 전제한 것이다. 시인은 돌아보며 묻는다. 노을이여, 너는 태어나지 않았던 것이 옳았던 것인가. 죽을 존재라면 왜 태어나는 것인가. 내가 눈 감은 뒤 다시 오지 않을 세상을 생각하면, 아예 내가 태어나지도 말았어야할 그 세상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까닭없는 깊은 슬픔과 서운함이 스며든다. 이게 무엇일까. 내 존재 전체가 부정되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 아무 일 없이, 아무 탈 없이, 나 없는 세상이 돌아갈 것이라는 것. 나만, 태어나지 않은 그 자리에서 영원히 침묵해야 한다는 것. 그 비정한 우주의 진실에 대해 묻는다. 그런데, 고은은 그 거대한 질문과 침묵 앞에서, 목숨의 스케일을 조금 확장해놓는다. 아니다, 한번으로는 알 수 없지 않은가. 한번으로는 기쁨도 슬픔도 혹은 깨달음도 허무도 얕지 않은가. 윤회설을 채택해, 여섯 번 일곱 번쯤 살이를 거듭하는 그 의미로 확장해 다시 묻는다. 해는 지지만 다시 뜨지 않는가. 진다는 것은 뜨기 위한 기꺼운 소멸이 아닌가. 고은의 시 앞에서, 내 붉은 낙조를 황홀히 우러른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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