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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감태준의 '허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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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와/손 씻고/옷 갈아 입으면서/한 허물 벗고 또 한 허물 입으면서/인생에도 마음대로 옷 갈아입히면서/바람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낀다/벌써 창을 열어둘 때인가?//마루에 나가 아내가 주는 토마토 주스를 마신다//앞산 나무들도 한창/새 옷 갈아입으면서/바람의 손길을 느끼는 듯 설렌다/벌써 창을 열어둘 때인가?//인생이 그렇게 녹록한 것이던가?/옷 갈아입듯 마음대로 입어지는 것이던가?/누더기 허물 벗으려면/그게 글쎄, 끝까지 다투지 않고/흉 없는 알몸만 믿어서 될 일이던가?/(.....)

감태준의 '허물' 중에서

■ 환절기, 옷을 갈아입는 일은 계절의 문지방을 넘는 일이다. 요즘처럼 봄과 겨울이 서로 살을 섞고 교대로 들이대는 형국에는 두부 자르듯 옷장 정리를 하기 어렵다. 세탁소에 가야할 겨울옷들이 다시 나오고 섣불리 꺼냈던 봄옷들은 추워진 날 진달래 움츠리듯 머쓱하게 다시 들어간다. 옷들이 이렇게 혼란을 겪는 동안 인간 또한 허물(虛物)과 실물(實物)에 관해 내면적인 혼선을 겪을 수밖에 없다. 기상 이변은 겨울의 의미와 봄의 의미, 그 사이 기탄없이 제 허물을 벗던 마음의 동작까지도 어리벙하게 만들었다. 감태준은, 그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너무 쉽게 지나간 것을 벗어제치는 그 결정들을 의심한다. 과연 그래도 되는가. 옷 갈아입는 일과 정신을 갈아입는 일은 동일한 것인가. 지난 옷을 허물이라 하면, 내 알몸에 있던 허물까지 모두 벗겨지긴 하는가. 새 옷으로 건너온 몸은 겨울옷이 둘러쌌던 그것과 달라진 것인가. 토마토 한 잔 꿀꺽 들이켜며 구름을 본다. 산을 넘는 구름 또한 그 경계에서 뭉개진 얼굴로 먹먹해 한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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