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레스터대학발굴팀...미늘창 도끼날에 맞아 즉사한 것으로 확인돼
리처드 3세는 1485년 8월22일 장미전쟁을 끝낸 보즈워스 전투에서 랭커스터 가문의 리치먼드 백작 헨리 튜더(헨리 7세)에 패해 32세로 최후를 맞았다.
1483년 형인 에드워드 4세 왕이 서거하자 조카인 에드워드 5세를 제치고 왕좌에 올랐으나, 재위 기간은 26개월에 그쳤다. 그는 전투에서 숨진 최후의 영국 왕으로 기록돼 있다.
발굴팀을 이끈 고고학자 리처드 버클리 교수는 “리처드 3세의 유골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면서 “이번 작업은 고고학 연구의 기념비가 될 개가”라고 강조했다.
그는 “유골 확인 과정에서 엄격한 과학적 분석을 거쳤으며, 유골에 대한 탄소연대 측정 결과도 1455~1540년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발굴팀은 이날 기자회견을 앞두고 발굴 작업으로 복원한 리처드 3세의 유골 사진을 사전에 공개했다.
레스터대 발굴팀은 지난해 9월 레스터의 한 주차장에서 리처드 3세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을 발견하고서 왕가 후손인 캐나다인 마이클 입센 씨와 DNA 비교를 하는 등 주인공을 밝혀내기 위한 분석 작업을 벌였다.
이 대학 생물고고학자 조 애플비 교수는 “발굴된 유해에서 비정상의 척추 측만증이 확인돼 리처드 3세가 ‘꼽추왕’으로 알려진 부분과 맞아떨어진다”고 밝혔다.
애플비 교수는 유골의 주인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사이의 남성으로, 사망에 이른 시점에 두개골 8곳 등 10군데를 다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두개골 부위의 큰 상처 2곳은 깊이가 10㎝나 돼 직접 사망 원인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특히 근거리에서 무게 2kg의 도끼날을 가진 미늘창에 맞아 즉사했을 것으로 애플비 교수는 추정했다.
또 유골의 주인은 척추측만증이 심했지만 알려진 것처럼 허리가 굽은 꼽추는 아니며, 팔 골격도 정상이라고 밝혔다.
리처드 3세의 유골은 이번 발굴에 따라 주차장 터를 떠나 조만간 인근 레스터 성당에 안치될 예정이다.
박희준 기자 jack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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