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식을 접하는 사람들 시선이 왜 서울 여의도와 명동 금융가로 쏠릴까요. 상황이 닮아 그럽니다. 한국 정부도 외환위기 당시 은행 87조원, 저축은행 17조원 등 총 168조원의 공적자금을 쏟아부었지요. 지금까지 회수한 게 102조원에 불과합니다. 막대한 국민 세금을 지원받아 살아난 은행들이 보인 행태는 어떤가요?
은행의 장사밑천은 고객예금입니다. 정부가 사업면허를 내주고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여러 도움을 줍니다. 따라서 이윤 추구에도 적정 예대마진 등 금도가 요구됩니다. 은행의 준(準)공적 기능이지요. 하지만 현실은 불황 속 가계부채에 헉헉대는 고객들을 몰라라 한 채 은행 임원들은 월가 금융인 못지않은 1억원 안팎 월급을 받습니다. 초임이 삼성전자를 능가하는 직원들도 보너스 잔치를 벌입니다.
욕심은 많은데 실력이 모자랍니다. 해외점포가 꽤 있지만 대부분 교포 상대 영업이죠. 외화조달 능력이 허약해 문제가 생기면 정부에 손을 벌립니다. 1997년 말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때 모두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털어 은행 뒷돈 대주느라 바빴잖아요. 근무 자세는 어떤가요. 신뢰가 생명인 금융회사에서 직원들의 횡령과 투자사기가 빈발합니다. 지난해 드러난 금융사고만 179건, 피해금액은 2736억원입니다.
K행장님! '눈물의 비디오' 기억나십니까? 환란 직후 정리해고 칼바람이 몰아칠 때 한 은행원이 자신은 떠나지만 남은 동료들이 똘똘 뭉쳐 으뜸은행을 만들어 달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은행권에서 말썽 많은 저축은행 대표를 '은행장'으로 부르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지요. 은행장과 격이 다르다며. 하지만 은행들이 '고객 무시' 행태를 계속하면 국민이 은행장들을 '은행 사장'으로 바꿔 부를 겁니다. 미국 시위대는 자본주의를 부정하지도, 월가가 사라지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외환위기 때 장롱에서 금반지를 들고 나온 우리 국민의 여의도를 향한 시선은 더 따뜻합니다. 이 좋은 계절 가을, 여의도와 명동에 촛불이 등장하기 전에 은행을 필두로 금융권 스스로 변하길 기대합니다.
양재찬 논설실장 ja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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