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집안에서 장사치가 나올 수 없다는 부친과 조부를 설득하던 그의 "나라를 위해 돈을 벌겠다"는 말은 독립운동자금 지원과 각종 생활용품, 가전제품의 국산화를 통해 그야말로 사업을 통한 애국으로 현실화됐다. 연암의 결단과 사업수완이 있었기에 우리 생활의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진 셈이다.
연암의 삶을 서술하며 빼놓을 수 없는 점이 바로 구씨 가(家)와 허씨 가의 세대를 초월한 화합이다. LG창립부터 2005년 LG-GS 계열분리되기까지 3대에 걸친 양가의 동업은 "헤어지더라도 적을 만들지 말라"는 연암의 가르침에 대한 실천으로 재계에 짝을 찾을 수 없이 소중한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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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희 기자 khw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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