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7세기 초 고구려와 당의 숨막히던 혈전을 다룬 영화 '안시성'이 인기를 끌면서, 고구려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높아지고 있다. 고구려는 수나라 양제의 100만 대군은 물론 수나라 멸망 이후 중국을 통일했던 당나라 태종의 80만 대군도 물리친 바 있으며, 이 사실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과 주변국의 역대 왕조들에게도 전설처럼 전해져왔다.
69만7000호를 5인 가족으로 생각해 계산한다면 대략 35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다만 이를 글자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는 역시 구당서에 나오는 백제의 인구 때문이다. 백제 패망 당시 인구가 76만호라고 적혀있어 고구려보다 더 많게 기록돼있다. 만주와 요동 일대가 한반도 서남부 지역에 비해 토질과 환경이 척박한 것을 고려한다해도, 영토 크기가 2~3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백제가 고구려보다 인구가 많다는 것은 일반인들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수나라 문제가 598년 고구려 원정에 나선 이후 당나라가 발해와의 천문령전투에서 패배한 698년까지 고구려는 100년에 걸쳐 수차례 수, 당과 격전을 펼쳤다.(자료=두산백과)
원본보기 아이콘350만이란 숫자로 수나라와 당나라의 연이은 대대적 침략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미지수다. 고구려는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입 때 대략 30만명 이상의 병력을 동원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만약 전체 인구가 350만명 내외라면 짧은 기간동안 전체 인구의 10% 가까운 병력을 계속해서 동원했어야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구당서의 내용을 토대로 고구려 인구를 350만명 내외로 보고 있지만, 그 정도 인구로 장기간 대형 전쟁을 계속 치를 수 있었는지에 대한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사진=영화 '안시성' 장면 캡쳐)
원본보기 아이콘현대 국가들의 인구대비 군인 비율도 대체로 1% 내외이며, 우리나라도 예비군 전력까지 다 합쳐도 7% 내외에 불과하다. 전 국토와 국민이 전투병력이라 알려진 북한 조차 현역 병력 비율은 전 인구의 4%대 정도다. 노동력이 곧 경제력과 직결되던 고대 농경사회의 상황을 고려하면, 전체 인구 10%나 되는 청년을 계속해서 군 전력으로 투사시키는 것은 전투 전에 식량 보급부터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쉽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 고구려 인구가 최소 500만명에서 1000만명 근처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냐는 주장도 있지만, 우리나라 인구가 1000만명을 처음 넘어선 것이 조선 중기인 1500년경으로 알려져있기 때문에 이 역시 확실치 않다. 앞으로 남북한의 교류가 활발해져 공동연구가 진행되고, 중국, 러시아 등 과거 고구려 영토가 걸쳐져있는 주변국들과의 학술교류가 더욱 활발해지면 더 정확한 고구려 인구 추정치가 나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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