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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천자]작가의 루틴<10>-최진영의 '열린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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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아시아경제는 '하루만보 하루천자' 뉴스레터 독자를 위해 매일 천자 필사 콘텐츠를 제공한다. 필사 콘텐츠는 일별, 월별로 테마에 맞춰 동서양 고전, 한국문학, 명칼럼, 명연설 등에서 엄선해 전달된다. 오늘은 젊은 작가들의 일상과 글을 쓰는 마음가짐을 담은 책 <작가의 루틴 : 시 쓰는 하루> 중 최진영 작가의 <열린 결말>을 소개한다. 글자수 1071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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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긴 여름에는 저녁 여섯 시, 해가 짧은 겨울에는 저녁 다섯 시에 퇴근한다. 겨울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늦어도 다섯 시 삼십 분에는 글쓰기를 멈추고 방에서 나온다. 문장을 더 이어 쓰고 싶더라도 일단 자리에서 일어난다. 산책을 해야만 하니까. 산책은 나에게 글쓰기만큼 중요한 일이다.


폭우나 폭설이 쏟아지는 날을 제외하고 매일 저녁마다 한 시간 정도 걷는다. 걸으면서 노을을 본다. 단 한 순간도 똑같지 않은 하늘을, 흘러가는 구름을, 아름다운 나무를, 피고 지는 꽃을 본다. 바람을 느낀다. 새 소리를 듣는다. 동네의 강아지들과 고양이들에게 인사한다. 지는 해를 보면서 지구의 자전을 생각한다. 계절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일몰의 방향을 보면서 지구의 공전을 실감한다. 정적인 내 방과 달리 바깥의 모든 것은 움직이고 있다. 소리 내고 이동하고 변한다. 나타나고 사라진다. 매일 저녁 산책하면서 나는 그것을 보고 듣는다. 세상의 움직임을 느낀다.

책상 앞에 앉아서 일을 할 때는 글을 제대로 쓰거나 쓰지 못하는 상태에만 집중하게 된다. 시야는 좁아지고 생각은 편협해져서, 내가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마치 큰일이 날 것만 같다. 산책을 하면서 깨닫는다. 방에서 내가 느낀 위기감이나 조급증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우스운 감정이었는지. 세상은 나의 일에 관심이 없다. 내가 글을 쓰지 못한다고 큰일이 날 리가 없다. 내가 글을 쓰지 못하면, 내가 글을 쓰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다시 글을 쓸 수 있다면, 그것은 우선 나에게 다행한 일이다. 글을 쓰는 동안 품었던 착각과 과대망상을 오려 내는 것. 부풀어 오른 부담감의 바람을 빼고 글쓰기를 원래의 자리에 내려놓는 것. 글 쓰는 나와 일상의 나를 분리하는 것. 저녁 산책을 할 때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강아지처럼 나는 매일 산책 시간을 기다린다. 걷다 보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화가 날 때 팔다리를 크게 움직여 성큼성큼 걸으면 그만큼 감정이 줄어드는 것도 같다. 우울할 때 음악을 들으며 느릿느릿 걸으면 그만큼 감정이 옅어지는 것도 같다. 게다가 걷기는 허리 건강에 좋다. 하루 몫의 글을 쓴 뒤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서는 그 순간을 나는 매우 사랑한다.


-최진영 외 6인, <작가의 루틴: 소설 쓰는 하루>, &(앤드),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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