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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워도 발암물질 없는 빵…'유전자 가위'로 만든다 [임주형의 테크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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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서 최초로 유전자 교정된 밀 재배 실험
DNA 교정 기술 크리스퍼(CRISPR) 이용
기후 변화 내성 가진 곡물 개발 핵심 기술
'유전자 편집 아기' 나오는 등 논란도 커
전문가 "식물 질병 진화 빨라져…새로운 기술 필요"

겉이 바싹 탈 정도로 구운 빵은 밀에 포함된 일부 영양소가 발암물질로 변해 건강에 해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이용하면 이런 물질을 제거한 빵을 만들 수 있다. / 사진=위키피디아 캡처

겉이 바싹 탈 정도로 구운 빵은 밀에 포함된 일부 영양소가 발암물질로 변해 건강에 해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이용하면 이런 물질을 제거한 빵을 만들 수 있다. / 사진=위키피디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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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버터에 구운 식빵은 색다른 풍미가 있지만, 너무 바싹 익히거나 타면 건강에 해로울 수 있습니다. 빵의 원료인 밀은 강한 열에 너무 오래 노출되면 발암물질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밀의 유전자를 조작해 몸에 해로운 물질을 제거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과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는 '크리스퍼(CRISPR)', 이른바 유전자 가위를 이용하면 가능합니다. 그러나 크리스퍼가 인간 유전자 조작 등 생명 윤리를 위반하는 일에도 쓰일 수 있다 보니, 과학계에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달 말, 영국 정부는 유전공학 전문 연구소인 '로탐스테드 리서치'가 개발한 밀을 재배하는 실험을 승인했습니다. 이 밀은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조작됐으며, 이러한 유전자 조작 곡식이 실제 토양에 심어져 재배되는 실험은 이번이 유럽 최초입니다.

이 특수한 밀은 일반 밀에 비해 '아스파라긴'이라는 물질을 매우 적은 양만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스파라긴은 120도의 열을 가하면 화학반응을 일으켜 아크릴아마이드라는 물질이 되는데, 아크릴아마이드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 암연구소에 의해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물질'로 분류된 상태입니다.


빵을 너무 바싹 굽거나 탈 정도로 익히면 아크릴아마이드가 생성돼 건강을 해칠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유전자 조작된 밀로 빵을 만들면, 굽거나 튀겨도 발암물질 걱정 없이 빵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제니퍼 A. 다우드나(왼쪽)와 프랑스의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오른쪽)가 지난 2016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만나 함께 포즈를 취한 모습. / 사진=연합뉴스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제니퍼 A. 다우드나(왼쪽)와 프랑스의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오른쪽)가 지난 2016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만나 함께 포즈를 취한 모습.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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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조작 곡식은 크리스퍼 기술로 만들어졌습니다. 흔히 유전자 가위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크리스퍼는 우리 몸의 '디옥시리보핵산(DeoxyriboNucleic Acid·DNA)'을 이루는 염기서열을 잘라내는 절단 효소로 이뤄져 있습니다. 절단 효소가 염기서열의 특정 부위를 잘라내고 나면, 그 부위에 새로운 유전정보를 집어넣어 붙이는 방식으로 'DNA 교정'을 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에 처음 크리스퍼를 통한 유전자 교정 가능성이 제기됐고, 지난 2012년 첫 DNA 교정 기술인' 크리스퍼-캐스9(CRISPR-Cas9)' 기술이 개발돼 특허를 인정받았습니다. 캐스9를 개발한 제니퍼 다우드나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와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 교수는 지난해 유전자 가위를 완성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후 과학자들은 캐스9를 이용해 동물이나 식물의 유전자를 교정하는 연구를 추진해 왔습니다.


그러나 크리스퍼가 항상 환영받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크리스퍼 기술은 생명 윤리에 위배된다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아왔습니다.


특히 곡물이나 동물이 아닌 인체에 대한 유전자 교정 시도는 극심한 반발에 직면했습니다. 지난 2015년 중국 준쥬황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의 유전자를 편집했다는 연구 결과를 한 의학 저널에 발표했습니다. 다음해(2016년)에는 중국 한 연구팀이 캐스9를 이용해 교정된 세포를 폐암 환자에게 투여하는 시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유전자 교정 기술인 크리스퍼(CRISPR)는 생명 윤리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다. / 사진=연합뉴스

유전자 교정 기술인 크리스퍼(CRISPR)는 생명 윤리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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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지난 2018년에는 세계 최초로 유전자 교정된 쌍둥이 여아가 탄생했습니다. 연구를 주도한 중국 과학자 허젠쿠이는 이 시술 덕분에 여아가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에 저항력을 얻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허젠쿠이는 전세계 과학자들로부터 '인간의 금기를 넘어섰다'는 비판을 받았고, 이후 중국 광둥성 법원은 허젠쿠이에 대해 불법의료행위죄로 징역 3년에 벌금 300만위안(약 5억467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이같은 우려는 유전자 교정 곡식에까지 미쳤습니다. 전세계 최대의 소비 시장 중 하나인 유럽연합(EU)은 이미 오래전부터 유전자 조작된 곡식의 수입 및 판매 등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반면 생명공학 강국인 영국은 이런 규제를 완화하길 원했고, 지난 2016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이후로는 EU의 유전자 곡식 금지 법안을 영국 내에서 폐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2월9일(현지시간) 케냐 중부 메루 지역에서 한 농부가 메뚜기떼 사이를 걸어가고 있다. 이 메뚜기떼는 지난 2019년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수십년 만에 우기가 찾아오면서 갑작스럽게 출연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2월9일(현지시간) 케냐 중부 메루 지역에서 한 농부가 메뚜기떼 사이를 걸어가고 있다. 이 메뚜기떼는 지난 2019년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수십년 만에 우기가 찾아오면서 갑작스럽게 출연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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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에는 점점 더 많은 나라와 전문가들이 유전자 조작 곡물의 잠재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기후 변화로 인한 토양의 생산성 악화, 병충해의 증가 때문입니다. 곡물의 유전자를 조작해 병충해나 극단적인 날씨에 대한 내성을 키우거나, 영양분을 더욱 높이면 기후 변화의 위협으로부터 식량 안보를 지키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식물의 병충해 내성에 관해 연구하는 세인즈버리 연구소 소속 닉 탤벗 박사는 최근 영국 매체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벼를 감염시키는 '도열병균'의 경우 한 해 6000만명이 먹을 분량의 곡물을 파괴하는 일이 가능하다"며 "새로운 식물 질병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으며, 이에 대항하려면 병에 내성을 가진 곡식을 개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과거에는 오랜 시간을 들여 품종 개발을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기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곡식을 만들 수 없다"며 "새로운 유전자 기술이 지속 가능한 농업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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