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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 로마군의 '장유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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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넷플릭스 역사드라마 '로마제국'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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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강력한 밀집보병 진형으로 지중해 세계를 제패한 바 있는 고대 로마군은 연령별로 크게 3개의 부대로 나뉘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나이가 어릴수록 가장 먼저 전투에 뛰어드는 진형의 맨 앞줄에 서게되고, 나이가 많을수록 뒷줄에 서는 형태였다고 한다.


하스타티라 불리는 가장 젊고 나이 어린 10대 병사들이 선봉에 서고, 그 다음 20대 중반 이상 병사들로 구성된 프린키페스, 마지막에는 35세 이상 베테랑 병사들인 트리아리이가 서있는 형태로 구성됐다. 나이에 따른 순서를 강조한, 글자 그대로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원칙대로 펼쳐진 이 진형은 겉으로만 보면 젊은이들이 가장 위험한 선봉에 서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달랐다. 당시 밀집보병 형태의 전쟁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은 10대들이 서있는 맨 앞줄이 아니라 30~40대들이 서있는 세 번째 줄이었다고 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줄은 적군이 눈에 들어오면 바로 옆으로 피해 도망칠 수 있지만, 세 번째부터는 눈앞의 적군이 아군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 데다 배후로 공격해오는 적과도 맞서 싸우면서 포위되기 쉬운 자리였기 때문에 사망자가 훨씬 많았던 것이다.


로마군의 군율 역시 트리아리이들에게 가장 엄하게 적용됐다. 이들이 겁을 먹고 도망쳐 진형이 흐트러지면 군대 전체가 적군에게 쉽게 돌파당하기 때문에 늘 중심을 잡아줘야 했다. 이들은 뒤에서 방패를 치거나 소리를 지르면서 앞에 서 있는 나이 어린 신병들의 사기가 무너지지 않도록 늘 신경써야 했다.


이들은 스스로도 도망치는 것을 큰 수치로 여겼고, 가급적 자신들의 아들과 같은 나이의 하스타티들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희생을 자처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로마군의 장유유서는 신·구 세대 간 강력한 신뢰를 구축하는 데 크게 작용했고, 로마가 지중해 세계를 통일하는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이런 희생적인 장유유서는 고대 동양에서도 별반 다르진 않았다. 흔히 ‘선배’의 어원이 된 것으로 알려진 ‘선비’라는 단어도 어질고 현명하게 후학들을 이끌며, 전쟁이 발생하면 가장 앞장서서 용맹하게 싸우는 전사를 의미하는 말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저 남보다 나이만 많다고 선배가 되는 것이 아니었던 셈이다.


이러한 배려와 존중 속에 만들어진 질서를 지향하는 것이 원래 장유유서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유교의 창시자라 알려진 공자 역시 야만과 문화의 차이를 물어보는 제자에게 "힘없는 노약자를 먼저 배려하는 것이 문화"라고 답했다고 한다. 청동기시대를 막 지난 당시 사람들의 장유유서를 살피다보면, 오늘날 우리 정치권의 소위 ‘장유유서’ 논쟁이 얼마나 부끄럽고 야만적인지 돌아보게 된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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