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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고 버티다 폐업에 '반토막 가동'까지…남동산단의 그늘(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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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남동산단의 한 공장 풍경. 작업장 문이 굳게 닫혀있고 사람도 보이지 않아 을씨년스러운 인상을 풍긴다.

인천 남동산단의 한 공장 풍경. 작업장 문이 굳게 닫혀있고 사람도 보이지 않아 을씨년스러운 인상을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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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정리하느라 매일 몇 시간 정도는 나와 있어요. 사용하던 기계들 중고로 팔기도 해야 하고. 여기저기에서 대출 끌어다 버텼는데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21일 오전 인천 남동국가산업단지에서 만난 주물업체 대표 김모(59)씨는 텅 빈 공장 마당을 거닐며 이렇게 말했다. 김 대표는 공장 운영 11년만인 지난해 말 직원들을 순차적으로 내보낸 다음 폐업했다. 지난 2~3년 사이에 급격히 나빠진 자금사정 탓에 빚 16억원을 떠안았다. 그는 "공장 팔고 기계들까지 다 팔면 얼추 맞출 수는 있을 거 같은데, 지나간 10여년을 생각하면 서럽다. 결국 제로(0)로 돌아가는 거 아니냐"고 토로했다.

한 때 연 매출 100억원대였던 회사를 접으려 결심한 것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악화하는 경영여건이 결정타였다. 20명 가까이 되던 직원들을 하나둘씩 내보내 생산성이 크게 떨어지고 납기를 맞추지 못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거래관계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두 블럭 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화학소재 공장은 오전에 굳게 닫혀있던 문이 오후들어 열렸다. 공장 관리와 경비 업무를 한다는 박모씨는 "오전에는 사장님 혼자 나와 행정업무를 보고 우리는 오후에만 일을 한다"고 전했다. 올해로 14년 된 공장이다. 잘 나갈 때는 일시적으로 3교대까지 돌렸다고 한다. 최대 300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지난해는 90억원대로 쪼그라들었다. 중국과 동남아 수출판로를 나름대로 탄탄하게 닦아둔 덕에 폐업은 하지 않고 버티는 중이다. 최대 70명에 달하던 직원은 현재 20여명 뿐이다.
사무실에서 만난 공장 대표는 "자금사정도 자금사정이지만, 일을 할 만한 사람들을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면서 "최저임금 올라서 인건비 늘지, 내년부터 52시간제 적용받지. 억지로 사람 채워서 공장 돌려봐야 수지가 안 맞을 거 같아서 아예 거래량 자체를 줄이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는 마음으로 구조조정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설이고 추석이고 명절 떡값 못 준 지 오래 됐다. 사정을 뻔히 알아서 그러는지 직원들도 그런 얘기 잘 안 꺼내고 눈치만 보는데, 저도 눈치가 보이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남동산단의 한 건물 외벽에 토지와 건물 매매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급매'를 강조하는 표시가 눈에 띈다.

남동산단의 한 건물 외벽에 토지와 건물 매매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급매'를 강조하는 표시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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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내식당이 없는 공장 직원들을 대상으로 25년 가까이 급식소를 운영해온 최모(69)씨는 간이매점과 휴게실로 쓰이는 공간을 가리키며 "원래 저기까지 다 식당이었는데 손님이 줄면서 지금 크기로 줄였다"고 했다. 단지 곳곳에 건물임대, 부지급매 등을 알리는 현수막이 넘쳐났다. 한 공인중개사는 "요즘 지방 부동산 가격 떨어진다고 난리인데, 이런 데 오면 그런 소리 안 나올 것"이라면서 "대부분이 급매라서 손해만 안 보게끔 처분해달라는 사장님들이 태반"이라고 전했다.

한때 제조업 메카였던 남동산단은 제조업의 구조변화와 인력 미스매치,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의 복합적인 요인으로 쇠락을 거듭하고 있다. 80%에 육박하던 가동률은 70% 아래로 내려갔다. 지난 1년간 입주업체가 300곳 이상 증가했지만 이 중 대다수인 291곳이 공장을 임대해 쓰는 임차업체로 채워졌다.

입주업체가 늘었어도 고용인원은 10만6063명에서 10만2725명으로 2338명이 줄었다. 인근 반월, 시화산단도 합계 7000여명이 감소했다. 한국GM 군산공장이 위치한 군산산단과 가전메카인 구미단지도 1년새 수 천명이 빠져나갔다.

인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지역상의에서 수도권 주요 산업단지를 조사한 결과, 업체당 고용이 크게 감소했고 생산액도 줄고 있어 산업단지 전반에 걸쳐 입주업체의 영세화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임차업체 증가 등 입주업체 영세화 현상은 고용의 질 악화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 경쟁력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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