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시시비비] 백 년의 대학, 백 위권 밖의 'SKY 캐슬'

뉴스듣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대치동. 어느 초대박 학원 설명회 풍경이다. 원장이 마이크를 잡는다. "우리 어머님들, 13억원 정도 돈은 갖고 계시죠. 베를린 아파트 한 채 값이 그 정도 합디다. 제가 가서 조사를 해봤어요. 그러니 그냥 우리 아이들 베를린 같은 데 보내세요. 세계 100위권에도 못 드는 서울대 보내려고 그렇게 고생들 시키지 말고요. 지금 유럽에서도 한창 잘나가고 있는 베를린 같은 넓은 물에 가서 아이들이 정말 기를 펴고 살게 말입니다."

이 소리는 교육부 장관보다 나은 발언인가? 아니면 어디 사교육 학원 장사 아무 말 대잔치인가? 우리의 눈길을 '100'이란 숫자에 한번 맞춰보자. 최근 지표에서 서울대가 세계 대학 순위 129위로 나온 것은 맞다. 미국 US뉴스앤드월드리포트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2019 세계대학순위(Best Global Universities Rankings)를 보면 세계 1위는 미국 하버드대, 2위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3위는 미국 스탠퍼드대, 4위는 미국 UC버클리대, 5위는 영국 옥스퍼드대의 순이었다. 아시아권에서는 싱가포르국립대(38위), 싱가포르 난양공대(49위), 중국 칭화대(50위), 일본 도쿄대(62위), 중국 베이징대(68위), 사우디 킹압둘아지즈대(76위) 등 6개교가 100위권에 들었다.
뭔가 찝찝하다. 워낙 여러 매체가 지표 장사를 하려 드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의 에이스 서울대가 100위권 밖이라는 것도 영 개운치 않다. 대치동 학원장 말마따나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나 세계 최강 극악 환경에서 쥐어짜 내가면서 고생한 게 얼마인데 싱가포르보다, 중국보다, 사우디보다 뒤처진 200위, 300위 중상위권이라니. 기분 나쁘다.

그러면서 'SKY'라 부르고 급기야 'SKY 캐슬'이란 드라마까지 만든 한국의 자화상이 돌연 한심해 보인다. "우물 안 개구리 아냐" 하며 뭔가 막 치밀어 오르기까지 한다.

냉정하게 체크해보자. 싱가포르 난양공대가 있다. 이 대학의 경쟁력을 가장 잘 과시해주는 사례가 커뮤니케이션학과다. 우선 이름부터가 한국의 여러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과와 다른 반열이다. 위 킴 위 스쿨(Wee Kim Wee School of Communication and Information)이란 브랜드가 곧 학과 명칭이다. 싱가포르의 언론인이었고 1950~1960년대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 대사를 지낸 외교관이었던 분의 이름을 붙였다.
국내에서는 부산 동서대, 임권택대학 말고는 거의 없는 경우다. 미국만 해도 IBM 경영자 이름을 딴 MIT 슬로언 경영대학, 기업 이름을 사용한 노스웨스턴 켈로그 경영대학, UCLA 앤더슨 스쿨 등 흔한 브랜드 작명 방법이 유독 한국에선 드물다 못해 금기시돼 있다. 서울대 캠퍼스에 삼성관, SK관, 포스코관이 즐비해도 그것들은 건물 이름일 뿐 학과 하나를 대표하진 못한다. 우리 대학들이 여러 군데 나눠 펀딩을 받아야 하고 '정주영학'처럼 과감하게 할 정도로 추진력도 없고 자신감도 약한 탓이다.

난양공대 위 킴 위 스쿨 한 학과 안에 교수진 80명이 포진해 있다는 놀라운 팩트도 눈여겨봐야 한다. 전임 교수진 30명, 방문 교수 50명이 언론, 미디어 비즈니스, 미디어 정책, 영상 기술, 최첨단 인공지능(AI) 프로덕션, 인지과학과 컴퓨팅 커뮤니케이션 등 요소요소에 교육하고 연구하는 거미줄을 펼쳐놓고 있다.

이에 경쟁하고 대칭하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는 어떤가? 현직 교수 14명만이 커뮤니케이션학이라는, 나라 경제ㆍ미래 비전 최전선에서 고립된 참호전을 수행하고 있다. 국가의 이름으로 전 세계 대학들이 수행하고 있는 이 배틀 그라운드에서 난양공대 80명 교수진이 던지는 수류탄 화염에 서울대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이미 1억여원을 받는 한국을 떠나 몇 배씩 더 많은 연봉과 연구비를 확약하는 난양공대로 떠나는 한국 인력들도 속출하고 있다. 유저 액티비티, 스마트 디바이스와 같은 핵심 분야 전공자들에게 100위권 밖 한국 대학들은 그저 그런 논외로 치부되고 있다. 'SKY 캐슬'이나 바벨탑은 쥐뿔. 낡고 퀴퀴한 지하실이나 창고, 야적장쯤으로 개명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대학들이 세계 100위권에서 점점 멀리 벗어나고 있다. 그래도 우리에겐 교육이 핵심 역량이었고 백 년 대학도 여럿 있는데 세계 100위권이라는 상징적 클럽과는 자꾸만 어긋나고 있다. 올해만 해도 중앙대와 서울시립대가 100주년이 된 경사로운 역사인데 북악에서 한라까지 대학가 분위기는 그만큼 뜨질 못하고 있다.

정말 소중한 우리 백 년 대학들이 세계 100위권으로 쇄도해 들어가는 기적이 곧 생기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들을 한 학과에서 80명의 초전문가 교수진이 가르치는 난양이공대학으로 보내지 않을 도리가 없을 터다. 베를린은 말할 것도 없고.

심상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내년 의대 증원, 최대 '1500명선'…법원 제동에 "성실히 근거 제출할 것"(종합) "너무 하얘 장어인줄 알았어요"…제주 고깃집발 '나도 당했다' 확산 전국 32개 의대 모집인원 확정…1550명 안팎 증원

    #국내이슈

  • "화웨이, 하버드 등 美대학 연구자금 비밀리 지원" 이재용, 바티칸서 교황 만났다…'삼성 전광판' 답례 차원인 듯 피벗 지연예고에도 "금리 인상 없을 것"…예상보다 '비둘기' 파월(종합)

    #해외이슈

  • [포토] '공중 곡예' [포토] 우아한 '날갯짓' [포토] 연휴 앞두고 '해외로!'

    #포토PICK

  • 현대차 수소전기트럭, 美 달린다…5대 추가 수주 현대차, 美 하이브리드 月 판매 1만대 돌파 고유가시대엔 하이브리드…르노 '아르카나' 인기

    #CAR라이프

  • 국내 첫 임신 동성부부, 딸 출산 "사랑하면 가족…혈연은 중요치 않아" [뉴스속 용어]'네오탐'이 장 건강 해친다?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