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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불이문/전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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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오는데
평생 걸렸다

오르막에 지친 무릎
수고 많았다
돌아보면 모든 말들이
다 헛소리였다

비를 기다리던 저녁이
붉은 휘장 치는 시간

그리운 사람도 없으니
떠나기 적당하구나
[오후 한 詩]불이문/전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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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문(不二門)'은 절의 본당으로 가는 여러 문들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있는 문이다. 그리고 '불이'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의미로 진리란 오로지 그 자체임을 뜻한다. 이러한 '불이문'의 원래 맥락을 따르자면, 이 시의 중심은 "돌아보면 모든 말들이" "다 헛소리였다"에 맺혀 있다고 볼 수 있다. "평생"을 걸려 얻은 이 깨달음은 저 절대 진리의 결계지로 들어서고 있는 시인의 모습에 정당함과 더불어 자못 비장함을 선사한다. 그런데 이 시의 마지막 문장은 괜스레 딴 생각을 품도록 이끈다. "그리운 사람도 없으니" "떠나기 적당"하다는 말은, 좀 객쩍게 적자면 짐짓 쿨해 보이기까지 하는데 어쩌면 그렇기에 그 뒷면을 더욱 들추어보고 싶은 것이겠지만, 여전히 "그리운" 그 사람이 혹은 그가 누구든 그저 사람이 그립다는 하소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불이'라는 절집의 기와 하나를 슬쩍 떼어 와 속세의 어느 길목에 표석으로 삼고 싶다. "그리운 사람"이 있으나 없으나 사람은 그리워하기 마련이다. "비를 기다리던 저녁"이 오고 있다. 다시 사람이 그립다. 아니, 다만 그립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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