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피해 없는데 반도체 판결 근거" 금지 가처분 행정소송 제기
[아시아경제 안하늘 기자] 세계 휴대폰 시장 1위를 달리는 삼성전자의 생산 노하우와 관련된 정보가 공개될 위기에 처했다. 정부가 산업재해와 관련이 없는 휴대폰 공장에 대한 정보 공개까지 허용하기로 결정하면서 기업들의 기밀이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공재가 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전자업계에서는 휴대폰 공장의 환경 보고서가 공개되는 문제는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공장의 경우와 상황이 매우 다르다고 보고 있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의 경우 조립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 등 희귀 질환으로 숨진 근로자의 유족이 작업 환경 측정 보고서 공개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2월 고등법원에서 유족의 손을 들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이후 고용부가 이 판결을 근거로 종편 PD의 정보공개 청구를 대거 허용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하지만 휴대폰 공장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와 달리 산재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거의 없어 고용부의 정보 공개 결정이 법원의 판결 취지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고용부 구미지청 관계자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정보 공개를 청구할 경우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자가 "공익적 목적이라면 내가 신청해도 되는거냐"고 묻자 그 관계자는 "어떤 목적이 아니라 법 집행 기관이다 보니 법률에 정해진 내용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구미 휴대폰 공장의 경우 국가 정책이나 예산이 투입된 사업이 아닐 뿐 아니라 경영상 비밀에 대한 사항이기 때문에 비공개 정보에 해당하는 것으로 봐야한다고 삼성전자는 주장한다. 게다가 근로자 중 희귀질환을 겪었다는 사례도 많지 않아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도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갤럭시S9' 등 최신 스마트폰을 생산하는 공장 정보가 공개될 경우 중국 업체들이 이를 참고해 공정 효율화 등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스마트폰 시장에서 수익을 내는 업체는 삼성과 애플뿐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의 배터리가 발화 됐을 때도 외부 전문가들에게 관련 정보만 확인해줬을 정도로 보안을 강조해왔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삼성 휴대폰 공장의 환경보고서 공개를 시작으로 너도나도 국내 기업들의 기밀을 공개해달라고 요청할 것으로 우려된다"며 "그동안 기업 관련 정보 공개에 대해 소극적이었던 공무원들이 이렇게 태도를 바꾼 것은 정권의 의중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오후 삼성전자가 신청한 국가핵심기술 판정을 위한 산업기술보호위원회 반도체 전문위원회 2차회의를 개최한다. 산업부는 16일에도 반도체전문위를 열고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가 국가핵심기술인지를 논의했으나 별다른 결론을 내지 못했다. 산업부가 해당 보고서에 국가기밀 내용이 포함됐다고 결정할 경우 삼성전자는 이를 근거로 보고서 공개를 금지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할 계획이다. 이미 삼성전자는 수원지방법원에 공개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으며, 최종 판단은 이번 주 안에는 내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안하늘 기자 ahn70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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