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통화 규제만 급급…타 응용 모델 제 때 대처 못해
대기업 참여제한 SW법, 글로벌 경쟁 발목 잡을 수도
[아시아경제 김철현 기자, 이민우 기자] 지난 2월 선보인 국내 첫 지역 가상통화 '노원코인'은 한달 만에 4000명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가맹점도 200곳을 돌파했다. 노원코인을 만든 블록체인 기업 글로스퍼의 김태원 대표는 그러나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그가 처음 생각했던 노원코인의 모습은 지금과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노원구민들이 노원코인을 사용하면서 블록체인 시스템 상에 저장된 소비 습관, 생활 패턴, 여가 생활 동선 등을 파악해 지역 경제를 살리는 것이 처음에 그린 큰 그림"이라고 했다.
하지만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정보를 저장하면 위ㆍ변조, 삭제가 힘든 블록체인의 특성이 개인정보보호법과 충돌했다"고 설명했다. 꿈을 펼치기도 전에 날개부터 꺾인 것이다. 김 대표는 "해외에선 우버와 페이스북과 같은 서비스도 블록체인 기술로 속속 탄생하고 있지만 국내에선 온갖 규제와 충돌한다"며 "전 세계적인 흐름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유연성을 가진 규제와 안전장치 등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잊혀질 권리와 충돌=노원코인의 사례는 블록체인 기술의 특징인 위ㆍ변조가 불가능한 점이 현행 개인정보보호법과 부딪친 경우다.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의 '목적 외 활용'을 금지하고 삭제하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블록체인 기술이 가장 활발하게 도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금융권의 경우 보관기한이 만료된 개인정보를 삭제하고 비정상 거래는 취소해야 하는데 블록체인에서는 할 수 없다. 또 분산원장 기술 특성상 거래와 관련된 모든 데이터는 참여자에게 공개되는 만큼 개인정보를 다루는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신용정보법)과도 충돌한다. 김경훈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현행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기본법과 개인정보보호법은 블록체인과 같은 분산원장에서 전자문서가 작성되고 개인정보가 분산되는 경우를 가정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블록체인 기술로 작성된 전자문서가 효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법적 근거 마련 등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얘기다.
◆규제 원칙 없는 무형의 규제=정부는 올해 블록체인 기술 개발에 100억원, 블록체인 활용 기반 조성사업에 42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상반기 중으로 '블록체인 산업발전 기본계획'도 수립해 블록체인이 4차 산업혁명의 기반 기술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글로벌 경쟁력 저하 우려=세계 각국이 블록체인 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의 대기업 참여 제한 조항이 발목을 붙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공공부문에서 대규모 사업을 진행하며 시장의 크기와 수요를 늘리고 이를 통해 자연스런 기술 발전과 경쟁을 유도해야 하는데 이 조항 때문에 시행착오를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블록체인 기업들은 투자를 많이 받아 자금은 두둑하지만 실체적인 서비스를 기획하고 제공한 경험이 없다"며 "이들이 정부 인프라를 블록체인 기반으로 바꾸는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시행착오의 피해는 국민들이 져야 하는 만큼 대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 안정적인 서비스가 창출되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블록체인의 탈중앙화와 투명성만을 높이 평가하는 것도 향후 규제 요인이 될 수 있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내년 5월부터 시행되는 유럽연합(EU)의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에 위배되는 부분 투성이라 글로벌 사업을 진행하기 힘들 수도 있다"고 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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