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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책상다리/이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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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다 먹어 치운다는 중국 사람들도 먹지 못하는 책상 다리가 네 개나 달린 책상 다리가 달렸으나 달리지는 못하는 책상 앞에 앉아 책상다리를 하고 밥을 먹던 시절 밥상이 없어 겸용하던 책상 책상이 없어 겸용하던 밥상 책보다 밥을 더 많이 보고 싶던 고학 시절 밥을 먹거나 책을 보거나 책상다리로 앉아 다리가 저릴 때까지 책을 보지 않으면서도 일찍이 청운을 타고 상경한 아이답게 먼 데 구름 속을 자주 들락거릴 때 다리가 달렸으나 달리지는 못하는 책상처럼 방 안에 우두커니 앉아 사서 고생한다는 생각을 달래느라 배는 고파도 꿈은 배불리 먹곤 하면서도 민주주의보다 배고픈 생각이 앞장서 달려오던 시절 어둑한 자취방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책상 앞에 앉아 얌전히 밥 먹는 시늉을 하며 굶는 것 들키지 않으려고 밥 먹듯이 책이나 읽으며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던 학창 시절 어제 지나간 시간보다 더 느리게 지 지나가지 않는



■우륵은 애이불비(哀而不悲)라 했고 공자는 애이불상(哀而不傷)이라 했다. 슬프나 슬퍼하지 않고, 애달프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시가 그렇다. "얌전히 밥 먹는 시늉을 하며 굶는 것 들키지 않으려고 밥 먹듯이 책이나 읽으며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던 학창 시절"은 아무리 지나온 과거라 해도 눈물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 고통은 이제 맑고 순해져 왠지 오히려 그리울 정도다. 그런데 "고학 시절"의 간난함이 그저 옛일이기 때문에 이처럼 탈색된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지막 문장을 보라. 그 시절의 신산함은 숨이 턱 막혀 말을 더듬을 만큼("지 지나가지 않는") 여전히 현재적이다. 옛말을 빌려 적자면 슬퍼하지 않되 지극히 슬픈 시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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