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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보고 싶지 않을 걸 볼 수 있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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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성호 기자]시카고 트리뷴 최연소 신입기자이자 특종보도로 명성을 높이고 있던 리 스트로벨은 무신론자다.

박성호 경제부장

박성호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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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업의 비리를 밝혀내 특종상과 승진을 한 손에 거머쥔 스트로벨 기자는 수상소감을 통해 자신의 소신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진실(truth)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실(facts)'을 통해야 한다. 사실은 미신과 무지와 횡포에 대항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무기다."

그는 아내가 기독교에 심취하자 예수의 부활이 허구라는 사실(?)을 파헤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스트로벨은 저명한 신학자와 심리학자, 의사 등을 찾아 다니며 예수의 실제 사망여부, 그를 십자가에 달아 죽인 로마 병사들의 사망판단 오류 가능성, 예수의 부활을 증언한 500여명 증인들의 집단 세뇌 가설 등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전문가들은 스트로벨과 논쟁을 하며 빠지지 않고 한마디씩 한다.

"당신은 이미 예수의 부활이 거짓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 사실을 뒷받침하는 주장만 귀담아 듣고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이 와중에 스트로벨은 대형 오보를 내게 된다. 경찰을 쏜 혐의로 기소된 힉스라는 용의자가 경찰의 정보원이었고 그 동안 수차례 기소됐음에도 경찰의 비호를 받아 가벼운 처벌만 받았다는 보도를 한 것이다.

결국 힉스는 중형을 선고 받고 교도소에서 다른 제소자들로부터 집단폭행 당해 사경을 헤매게 된다.

그러나 몇 개월 후 그는 우연한 기회에 힉스는 범인이 아니라는 물증을 찾아낸다.

스트로벨은 '힉스사건'을 보도할 때 편집국장이 수 차례에 걸쳐 확실하냐고 물었을 때 '거의 맞다'라며 자신이 수집한 각종 증거를 들이밀었지만 그가 확신했던 증거는 '사실'이 아니었다.

오보임을 인정한 스트로벨은 병원 중환자실에 있는 힉스를 찾아가 사과한다. 자신이 진실을 놓쳤고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힉스는 온 힘을 다해 그에게 한 마디 건넨다. "당신은 보고 싶지 않았겠지.(You didn't want to see it.)" 그의 사실맹신주의를 준엄하게 꾸짖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는 예수의 부활을 사실로 받아들여 아내와 화해하고 나중에는 결국 목사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수는 역사다'라는 제목으로 책이 번역됐고 영화로도 소개된 'The case for Christ'의 스토리다.

최근 경제상황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과 경제책사(責使)들은 힉스의 말처럼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는 함정'에 빠져든 것 같다. 자기신념 강화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도 하다.

단적으로 공무원 17만4000명 증원에 따른 재정추계조차 없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평균 30년 근무를 전제로 하면 327조원이 소요된다는 보고서를 냈지만 기획재정부는 추계에 6개월이 걸린다며 답변서 제출을 꺼리고 있다. 단, 향후 5년간 재정상 무리가 없다는 것이 정부와 여당의 주장이다.

탈원전 정책도 전력수급에 문제가 없고 향후 5년간 급격한 전기료 인상 또한 없다고 한다. 아동수당 도입과 기초연금, 최저임금 인상 등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정책들이 향후 10년, 20년 후 재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서 정부와 여당은 보고 싶지 않다.

지금 정부와 여당의 '5년 무탈론' 주장은 스트로벨이 오보를 냈을 때와 마찬가지로 '사실'에 근거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사실이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한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눈앞의 사실은 미신과 무지와 횡포에 맞설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정부는 괴롭더라도 보기 싫은 것을 봐야한다.

참기 힘든 심통(心痛)이 있더라도 과학적 분석을 통해 나오는 정밀한 예측과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이는 한국 경제가 파국을 피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박성호 기자 vicman120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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