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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구토와 피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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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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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嘔吐)는 먹은 음식물을 토해 내는 일이다. 상한 음식을 먹고 식중독을 일으켰을 때, 비위에 맞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었을 때, 위장이 끌어안고 버틸 수 없을 정도로 폭식을 했을 때 구토를 한다. 끔찍한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아도 구토를 한다. 먹은 것이 없는데도 뭔가가 치밀어 올라 구역질을 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한 30대 남성도 어느 날 불현듯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앙트완 로캉탱은 연금으로 생활하며 역사를 연구한다. 부빌이라는 도시에서 도서관에 드나들며 드 를르봉이라는 인물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그는 어느 날 물가에서 물수제비뜨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본다. 그들처럼 물수제비뜨기를 해보려고 돌을 집어 드는 순간 구역질이 났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뒤에도 자주 구역질이 나고, 그때마다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일기를 쓴다.
 그는 공원 벤치에 앉아 마로니에의 뿌리를 내려다본다. 그러다 구역질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가 마로니에 뿌리를 생각할 때, 그것은 마로니에 뿌리라는 언어의 허울을 벗고 그 자체로서 그에게 침입한다. "기괴하고 물렁한 무질서의 덩어리-무섭고 음흉한 있는 그대로의 적나라한 덩어리만 남았다." 구토란 인간이나 사물의 언어로서 성립하는 의미나 본질을 적출해버린 '무질서의 덩어리'였다.

 로캉탱은 마로니에 뿌리를 보면서 존재의 이유 없음을, 모든 존재는 서로 아무 관계없이 존재한다는 부조리를 깨달은 것이다. "'나'는 우연히 태어난 별 볼일 없는 존재"이며 나의 본질은 '덤'에 지나지 않고, 이 사실이야말로 생명의 본질이다.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원제 'La Nausee'는 구역질이나 메스꺼움에 더 가깝다고도 한다)는 실존이 본질에 우선한다는 명제에 대한 길고 지루한 설명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관점이라면 본질은 실존에 우선한다. 운명조차 신의 설계 안에 있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한 사람을 보고 예수의 제자들이 묻는다.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예수가 대답한다. 누구의 죄도 아니며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요한복음) 사람은 신의 도구로서 제 몫의 삶을 산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인간의 자유와 책임에 극단적일 만큼 집착했다. 그의 세계에서도 사람은 제 몫의 삶을 산다. 하지만 스스로 본질을 만들어가는 존재다.
 로캉탱은 "사람들은 물체들을 사용하고 제자리에 갖다 둔다. 그것들이 나를 만진다면 참을 수 없다"고 토로한다. 구토는 인간의 생리 활동이다. 그 일부는 정신의 세계와 통한다. 이제 로캉탱은 르 를르봉에 대한 글을 쓸 수 없다. 그는 파리로 돌아가 소설을 쓰기로 한다. 순간 결연한 전사(戰士)가 되었다. "다시 걷는다. 나는 고독하다. 그러나 나는 도시로 가는 군대처럼 행진한다."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셔도 구역질이 난다. 어떤 사람을 일부러 손을 넣어 토해낸다. 이런 구토도 깨달음과 교훈을 주기는 한다. 숙취와 두통이다. 아직 여름은 다 가지 않았다. 어스름 도시의 뒷골목에는 진탕 마시고 정신줄 놓은 사나이들이 적잖다. 배우 백윤식의 대사를 빌리자면 "그러다 피똥 싼다".  

문화스포츠 부국장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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