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라일강가에서만 유독 자라는 갈대를 사용해서 그 성질의 변화 없이 큰 노동력으로도 소량밖에 생산하지 못하는 것이 파피루스였지만, 반면에 식물의 섬유를 사용해 적은 노동력으로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종이였다. 당연히 노예 노동력의 여유에 빠져있던 이집트는 구태여 '종이'를 생산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집트는 세계사 속의, 종이 발명국 지위도 책 발명국 지위도 다 잃어 버렸다. 여유가 부른 침체와 퇴보였다. 반면에 결핍으로 열등한 지위에 있었던 나라는 창의와 생성의 힘으로 현실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지난 석 달 동안 나라 안에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부쩍 많이 나타났다. 그들은 여기저기에 많은 것을 주겠다고 했다. 수입이 적다싶은 근로자들부터, 그들을 고용하고 있는 영세업자들한테까지. 그리고 생계가 어렵다 여겨지는 노년층에게, 신성한 국방의무를 이행하는 나라의 군인들에게, 빚을 진 뒤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자들에게 등. 이 현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려 속에서 애만 태우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받는 사람들이 자신의 불합리성과 결핍을 앞서 인정하도록 해야 한다. 그와 함께 제대로 받을 사람에게 줘야, 결핍과 열등을 창의와 생성으로 바꿔, 비로소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무조건, 막무가내는 매우 위험하다. 이는 사람의 영혼을 병들게 한다. 그렇게 세상을 보는 눈을 가리고 세상을 느끼는 가슴을 가리게 한다. 염치를 잃어버린 존재를 만들어 놓는다는 것이다. 거기에 그 경계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불평과 불만 속에 몰아넣는다. 그리하여 끝내는 현재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몰락시키고, 세상을 허방 속으로 빠뜨릴 수 있다. 얼마든지 있다. 일본의 '프리터족'은 그런 조건이, 그런 환경이 낳은 '막무가내 인류'다.
이상문 소설가 전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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