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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책과 저자] 여름에 읽는 겨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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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캐스트너, '하늘을 나는 교실'

누군가 먼 곳을 그리워할 때, 그리움에는 근원이 있다. 우연의 산물인 듯한 행동에도 실마리는 있다. 실마리를 공안(公案)으로 삼아 성찰하면, 마침내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잡아당기듯 영원과도 같은 시간의 미로를 더듬어 과거의 어느 한 순간과 조우하게 된다.

 그래서일 것이다. 나는 일 년에 몇 번 에리히 캐스트너가 쓴 '하늘을 나는 교실'을 읽는다. 청소년을 위한 아름다운 이야기다. 내 나이 또래라면 대부분 초등학교 시절 이 책을 읽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급문고에서 빌려 처음 읽었다. 그때 제목은 '날아가는 교실'이었다. 독일어 제목(Das Fliegende Klassenzimmer)을 생각하면 어느 쪽도 이상하지 않다.
 배경이 되는 계절은 겨울이다. 학생들이 성탄절을 앞두고 '하늘을 나는 교실'이라는 연극 무대를 준비한다. 연습에 열중하던 이들은 근처 실업학교 학생들과 한 바탕 싸움을 벌인다. 친구 하나가 포로가 되고, 학생들은 친구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서슴지 않는다. 수수께끼의 인물 니히트라우허 아저씨와 유스투스 선생님의 우정, 겁쟁이와 먹보와 우두머리 등 어느 학교에나 있을법한 친구들이 책갈피마다 숨어 있다 튀어나온다.

 이 책을 수백 번 읽었을 것이다. 유년의 독서 경험이 절반 이상이다. 프로야구 타자의 타율에 빗대자면 봄에 쌓아올린 몰아치기 안타를 밑천삼아 가을에도 3할대를 유지하는 식이다. 이 아름다운 책을 읽는 데는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중년이 되어 읽었는데도 여전히 따듯한 감동이 일렁거린다. 어느 날 나는 문득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이 궁금해졌다.

 '하늘을 나는 교실'의 배경이 되는 곳은 키르히베르크(Kirchberg)와 헤름스도르프(Hermsdorf)다. 키르히베르크는 등장인물인 소년들의 학교가 있는 도시, 헤름스도르프는 여러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마르틴 탈러의 집이 있는 곳이다. 어린 나는 이 책을 덮으며 '언젠가 독일에 가겠다. 그러면 반드시 키르히베르크와 헤름스도르프에 찾아가겠다'고 결심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 나는 캐스트너가 쓴 이야기 속의 키르히베르크와 헤름스도르프가 실재하지 않는 공간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늘을 나는 교실'은 세 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졌다. 1954년, 1973년, 2003년. 나는 이 중에 흑백으로 찍은 1954년 버전을 가장 좋아한다. 키르히베르크가 나오는 장면은 오스트리아 티롤 지방에 있는 키츠뷔엘과 쿠프스타인에서 주로 찍었다고 한다.

 그래도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키츠뷔엘은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 또 하나의 선물이다. 공간적 상상력…. 또한 실망만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아름다운 구절들이 쏟아져 나온다. 은사의 도움으로 고향에 돌아가 성탄을 보내는 가난한 소년 마르틴은 부모와 함께 저녁 거리를 산책하다 문득 멈추어 하늘을 본다. 그가 말한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우리는 몇천 년 전의 별빛을 보고 있어요. 저 빛이 우리에게 닿기까지 그만큼 시간이 필요하죠. 지금 보이는 별은 대개 예수님이 태어나기도 전에 사라졌을 거예요. 하지만 그 빛은 아직도 여행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빛을 주고 있어요. 오래전에 식었거나 어두워졌을 텐데요."

 나중에 나는 마르틴이 어린 시절의 캐스트너가 아닐까 상상했다. 캐스트너는 '독일인으로서는 드물게' 유머러스한 작품을 썼다는 평을 들었다. 드레스덴에서 가난한 직공의 아들로 태어나 라이프치히와 베를린 대학에서 장학생으로 공부했다. 1928년 첫 시집 '허리 위의 심장'을 발표해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하늘을 나는 교실'은 1933년에 발표했다. 히틀러 집권 시기에 집필금지, 체포 등 수없이 박해를 받았지만 늘 희망 가득한 사나이였다고 한다.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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