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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소곤 그림이야기〕사랑, 그 아름다운 빛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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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이 말을 건넨다. 사랑 이야기를 한다. 시작의 짜릿함을, 사랑의 두근거림을, 몰래 나누는 달콤함을, 절정에서의 정열을 보여주며 그림과 대화하라 일러준다. 화폭 속의 주인공이 되어 사랑을 꿈꿔보라 말한다.
 '시골의 사랑'1882년, 줄 바스티엥 레파주 (1848-1884), 캔버스에 유채, 194 x 180 cm,  푸쉬킨 박물관, 모스크바, 러시아

'시골의 사랑'1882년, 줄 바스티엥 레파주 (1848-1884), 캔버스에 유채, 194 x 180 cm, 푸쉬킨 박물관, 모스크바,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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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다. 첫사랑의 가슴 떨림도, 첫 키스의 알싸한 기억도, 첫만남의 들뜬 설렘도 모두의 삶에 처음이란 모습으로 자리잡아 추억의 양분이 된다. 그 처음을 시작하는 연인들의 수줍은 이미지를 그림이 보여준다.
 점심 시간을 반납하고라도 남자는 소녀가 보고 싶어 한달음에 달려 왔나 보다. 작업복을 입은 채로 말이다. 이름 모를 들꽃 한 송이를 꺾어 그녀에게 내민 후 쑥스러움을 어쩌지 못해 손끝만 만지작거린다. 남자는 "나 너 때문에 밤새 한숨도 못 잤어" 이 말을 하고 싶었겠지만, 오전 작업의 고달픔만을 토로하며 주변만 맴돌고 있다. "일 마치고 오늘 저녁에 우리 만날까?"라고 꼭 하고픈 말을 꺼내야 하는데 말이다.
 양 갈래로 앳되게 머리를 땋은 여자는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이 설렘을 어찌 해야 할지 몰라 수줍게 고개 숙이고 묵묵히 그를 듣고 있다. 어색하게 받아 든 꽃송이를 보며 두근대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킨다. 그래도 이 낯선 감정이 싫지 않은지 조금 웅크린 뒷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그렇게 둘은 아찔한 심장의 진자 운동을 서툴게 시작하고 있다.


'은밀한 입맞춤' 1780년대 후반,장 오노레 프라고나르드(1732-1806),캔버스 유채, 45x55cm, 에르미타쥐 박물관, 상트 페테르 부르크, 러시아

'은밀한 입맞춤' 1780년대 후반,장 오노레 프라고나르드(1732-1806),캔버스 유채, 45x55cm, 에르미타쥐 박물관, 상트 페테르 부르크,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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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하는 사랑인가 보다. 시간이 정지된 듯 모두의 눈을 피해 짜릿함을 나누고 있다. 사랑의 묘미 중에 남몰래 즐기는 밀회만큼 엔돌핀 솟는 일은 없단다. 급하게 여자를 끌어당겨 볼에 키스하는 남자의 애틋함이 절묘하다. 아마 여인은 저 방안 손님들 중 한 명 일거다. 무리에 섞여 있어야 하지만 그와 만나고픈 여인은 모두에겐 잠깐 어딜 다녀오마 거짓말하며 스카프를 집어 드는 척 집안을 서성인다. 그와의 우연한 만남을 기대하며 말이다. 그녀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문밖 어둠 속에서 순간을 기다린 남자는 여인을 가로채 도둑 키스를 한다. 만져질 듯 생생한 그녀의 드레스 자락이 사각사각 소리를 낼까 괜히 내 가슴이 두근거린다. 찰나를 표현한 이차원 화폭의 짜릿한 표현이다.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1735년, 프랑수아 부쉐(1703-1770), 90 x 74cm, 캔버스에 유채, 푸쉬킨 박물관, 모스크바, 러시아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1735년, 프랑수아 부쉐(1703-1770), 90 x 74cm, 캔버스에 유채, 푸쉬킨 박물관, 모스크바,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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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열의 회오리에 빠진 듯 하다. 신화의 최고 영웅 헤라클레스와 세기의 팜므파탈 옴팔레가 나누는 사랑의 장면이다. 남녀의 관능적 사랑을 그린 명화 중 가장 사실적이고 격정적인 그림이 아닐까 한다.
 아폴론 신전에 있는 삼발이 의자를 훔친 헤라클레스는 리디아의 여왕 옴팔레에게 노예로 팔려 몸종으로 살아야 하는 벌을 받는다. 하지만 모든 신화 속 주인공들이 그렇듯 결국에 둘은 정열적인 사랑에 빠진다. 불타는 듯한 둘의 사랑이 부쉐의 붓끝에서 춤을 춘다. 지금 이순간 생명이 다하더라도 이렇게 이어진 끈을 절대 놓지 않겠다는 의지가 넘쳐 난다. 사랑하지 말아야 할 사람과의 금단의 사랑, 늘 금지된 것은 상당히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로코로 풍의 화려한 표현이 그들의 이글대는 정열을 더욱 생생하게 만든다.

'어머, 너 질투하니?' 1892년, 폴 고갱(1848-1903), 캔버스에 유채, 89 x 66 cm, 푸쉬킨 박물관, 모스크바, 러시아

'어머, 너 질투하니?' 1892년, 폴 고갱(1848-1903), 캔버스에 유채, 89 x 66 cm, 푸쉬킨 박물관, 모스크바,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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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끊임 없는 대화를 낳는다. 사랑의 열띤 감정을 표현하는 수많은 언어를 통해 또 다른 기호가 만들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도시 문명을 버리고 타히티로 원시적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고갱은 원주민의 꾸밈없는 삶을 자신만의 색채에 녹여 표현한다. 친구인 듯한 둘은 그들의 지난밤 사랑을 솔직히 얘기한다. 분홍빛 행복감에 젖어 있는 한 여인에게 다른 여인이 약이 오른 듯 뽀로통 부어 다리를 세우고 돌아 앉는다. 그런 친구를 보며 갈색의 빛나는 몸을 가진 여인은 누운 채로 말한다. '너, 질투하니?'
 건강한 원주민 여인 주변으로 색채의 편린들이 요동을 친다. 타히티 섬의 원시적 아름다움일 수도 있고, 활화산 같은 사랑의 격정을 표현한 다양함 일수 있는 고갱의 빛깔이다.
 그림 속의 삶은 고정돼 있고 작가가 보여주는 이미지는 한정돼 있지만 무한 상상력으로 나를 그림 속에 그려 넣을 수 있다. 르파주의 '시골의 사랑'을 보며 나의 처음이 떠올라 가슴 설랠 수 있는 거고, 도둑 키스의 짜릿함을 상상하며 혼자 웃음 지을 수 있는 것이다. 또, 헤라클레스와 옴팔레의 정열적 사랑에 가슴 떨려하고 타히티 원주민 처녀가 되어 아름다운 대자연 앞에서 뒹굴며 원시의 나를 꿈꿀 수 있는 거다. 낯선 그림을 보며 작가가 도대체 무엇을 그린 걸까? 너무 신경 곤두 세우지 않아도 된다. 그림의 주체가 되어 마음을 열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된다. 그렇게 그림과 이야기 나누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예술 소통이다.

김희은 갤러리 카르찌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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