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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소갈비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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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갈비(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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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주재원으로 발령이 난 형을 따라 3~4년 동안 유럽에서 살게 된 어린 조카들은 출국 전날 밤 먹고 싶은 음식으로 소갈비구이를 꼽았다. 돼지갈비도 닭갈비도 아닌 한우 소갈비. 혹 고갈비를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소?'하고 되묻고 싶었다. 하지만 명절에 먹었던 갈비찜의 고기를 숯불에 구워 먹고 싶다고 호방하게 콕 집어 얘기했다고 한다. 진즉 크게 될 애들이라고 생각은 했는데 과연 배포가 남달랐다.

생각해보면 소갈비구이는 과거에도 가족들과 특별한 외식을 할 때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으니 조카들의 선택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1970~80년대 유년 시절을 보낸 지금의 30~40대에게도 소갈비구이는 선망하는 가족 외식의 대표 메뉴였다. 당시 '가든' 같은 단어가 뒤에 붙은 갈빗집들이 생겨났었는데, 들어서면 정말로 '가든'이 펼쳐져 오늘 꽤나 호사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교외에 자리 잡은 갈빗집들은 넓은 대지에 작은 동물원까지 갖추고 있는 곳도 있었다.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단위 손님을 노골적으로 겨냥한 조경이었으니 갈빗집을 가자고 하면 몹시 설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 광주에도 소갈비와는 당최 어울리지 않는 '수궁'이라는 옥호를 쓰는 갈빗집이 있었는데 꽤 많은 동물들을 키우며 동심을 자극했다. 소갈비 집에 해물탕 집에나 어울리는 '수궁'이라는 이름을 붙인 작명도 대담했는데, 이 집의 명물은 수궁답지 않게 말하는 구관조였다. 아마 '안녕하세요'나 '안녕히가세요' 등의 접객을 하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갈빗집의 위용에 입이 떡 벌어지고 흔히 볼 수 없는 동물 친구들에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그러니 가족들과 갈비를 먹으러 갔다는 것은 큰 자랑거리였고, 친구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갈비를 먹으러 가서 말하는 새와 대화를 나눴다고 과장 섞어 자랑을 한바탕 하면 워낙 힘을 준 탓에 어깨가 뻑적지근할 정도였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갈빗집에서 한 외식은 유복한 유년 시절 화목한 가족의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이나 30년 전인 1980년대나 소갈비구이는 사달라는 말에 멈칫거리게 되는 비싼 음식이지만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대폿집에서 파는 저렴한 안주였다고 한다. '식탁 위의 한국사'를 보면 1930년에는 갈비 한 대가 국밥 한 그릇의 3분의 1 가격이었다며 당시 신문기사를 소개하고 있다. 직접 확인해 보니 과연 그랬다. 강릉에서 음식점 사장들이 모여 가격을 내리기로 했는데 국밥, 떡국, 비빔밥 등은 15전이고 만두는 20전, 갈비는 5전이라는 기사다. 아마도 갈비구이는 하나 시켜서 대포 한 잔 할 수 있는 단출한 안주였던 모양이다. 가격은 다르지만 신촌의 서서갈비에서는 이런 대폿집 안주의 정서가 느껴진다. 일단 의자도 없이 서서 먹어야 하니까 한 번 가서 먹으면 쉬 잊히지 않는다.
이렇게 가격이 비싸든, 싸든, 가족과 함께한 기억이든, 홀로 서서 먹는 기억이든, 소갈비는 추억과 함께 구워진다. 이제 암스테르담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게 될 조카들은 출국 전날 구웠던 소갈비를 어떻게 추억할까. 할아버지가 큰 맘 먹고 지갑을 열었던 것을 기억할까. 삼촌의 젓가락은 조카들이 갈비를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반찬 그릇 위만 맴돌았다고 소소하게 추억하면 좋으련만.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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