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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요일에 보는 경제사]성춘향과 이몽룡의 데이트비용은 얼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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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소설 표지(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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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연애,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한 'N포세대'가 키워드인 세상에서 조선시대 연애소설인 '춘향전'의 이몽룡과 성춘향의 이야기는 정말 시대만큼이나 멀리 떨어진 꿈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쉽다. 한편으로 조선시대라면 또 그런 낭만이 왠지 살아있을 것만 같은 느낌도 준다.

하지만 이 소설의 앞에 간략하게 나오는 춘향이와 몽룡이의 프로필을 보면 둘은 결코 서민의 사랑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남원부사의 아들인 몽룡, 퇴역 관료와 퇴기의 딸인 춘향은 모두 노비 1명씩을 수행원으로 데리고 다니는 금수저 집안 출신들이다. 춘향전에서는 생략된 그들의 데이트 비용 또한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둘이 처음 만난 광한루 데이트 비용을 지금 돈으로 따지면 과연 얼마나 될까?
신윤복의 월하정인(月下情人) 그림(사진=간송미술문화재단)

신윤복의 월하정인(月下情人) 그림(사진=간송미술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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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추정하려면 먼저 소설의 배경인 18세기, 당시 화폐인 상평통보의 현재 가치에 대해 따져봐야한다. 전 근대시대인 당시와 현재의 화폐가치를 1:1로 교환할 수는 없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주식으로 먹고, 물가의 척도로도 쓰이는 쌀값을 이용하면 대략적인 화폐가치를 계산할 수 있다.

18세기 조선에서는 상정가(詳定價)라고 해서 국가에서 정한 공식적인 물품 가격이 있는데 쌀 1섬은 5냥이었다. 여기서 쌀 1섬은 144㎏ 정도. 2016년 11월 통계청이 발표한 산지 쌀가격은 20kg 기준 3만2337원. 약 3만원이라고 치면 조선시대 쌀 1섬은 현재의 화폐로 21만원 정도가 된다. 쌀 1섬 가격이 5냥임을 감안하면 조선시대 상평통보 1냥은 현재 약 4만원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화폐단위는 1냥이 10전, 1전이 10푼이었다. 물가는 18세기 당시 사회상을 자세히 기록했던 학자 황윤석(黃胤錫)의 이재난고 기록을 참조해 추정했다.

일단 단오 소개팅 전, 몽룡의 집에서부터 출발해보자. 올해 17세인 몽룡은 이번 단오 소개팅에 대한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있는 과거수험생. 아무 옷이나 입고 나갈 수는 없으니 새 옷을 구매하기로 한다. 고급 누비옷은 4냥(16만원), 일반 옷은 2냥(8만원)이다. 그래도 소개팅을 나가는 것이니 고급진 옷을 입기로 했다. 짚신도 신상품을 샀는데 5전(2만원)을 썼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쓰던 갓(사진=두산백과)

조선시대 양반들이 쓰던 갓(사진=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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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패션의 완성인 '갓'을 산다. 갓과 망건(網巾)은 개당 1냥(4만원)이다. 여기에 좀더 멋을 부리기 위해 탕건(宕巾)에 손을 대려고 하는데 탕건은 7냥(28만원)으로 머슴인 돌쇠의 한달 월급하고 맞먹기 때문에 아버지한테 혼날까봐 그만두기로 한다.

어느정도 외관을 갖추면 데리고 나갈 수행원이 필요하다. 단오날은 청춘남녀가 자유로이 만날 수 있는 날이긴 하지만 아버지가 남원 땅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몽룡의 경우 본인이 나서서 직접 헌팅을 하고 다닐 경우엔 "난봉꾼인 남원부사 아들내미"란 제목으로 다음날 조보(朝報·당시 신문)에 실릴 수 있다. 전국적인 불명예를 얻지 않기 위해 사랑의 메신저로 방자를 데리고 나가기로 한다.

방자는 노비지만 노비 역시 그냥 데리고 나갈 수 있는게 아니다. 일당을 챙겨줘야한다. 노비의 기본 일당은 하루 1전(4000원), 소개팅 날 주선을 하는 등 밖으로 나가야할 경우엔 출장비 5전(2만원)이 추가된다. 여기에 식비 2전(8000원)은 별도로 줘야한다. 일이 잘 성사되면 상여금으로 2냥(8만원)도 찔러줘야하니 이만저만 돈이 많이 들어가는게 아니다. 여기까지가 데이트 준비과정에 들어간 돈이다.

이제 춘향이와의 만남이 시작돼 본격적인 데이트에 들어갔다. 간단히 식사와 술 한잔을 곁들이기로 하고 주막으로 갔다. 주막도 가격이 싸진 않다. 주막에서 만나면 식사 한끼 비용이 4전(1만6000원), 술 한잔에 1전5푼(6000원)씩이다. 밥먹고 술 한잔씩만 마셔도 2만8000원. 여기에 후식으로 떡을 2전(8000원)에 먹었다. 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 벌써 3만원은 훌쩍 넘어갔다. 여기까지만 계산해도 둘의 소개팅 비용은 당시 서민들이 감당할 수준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실제 일반 백성들은 물론 흙수저 벼슬아치들의 삶은 당시에도 꽤나 팍팍했다고 한다. 제아무리 양반이라고 해도 몽룡이처럼 금수저 집 아들이 아닌 이상 투잡(two job)은 기본이고 부인도 반드시 맞벌이를 해야했다. 당시 과거에 급제해 처음 입사한 종9품 벼슬아치의 연봉은 쌀 7섬 정도. 돈으로 계산하면 35냥에 지나지 않는다. 한양에 세 칸(15평 정도)짜리 초가집 한 채가 150냥, 같은 평수의 기와집 한 채가 300냥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정말 아무것도 안 먹고 숨만 쉬고 10년을 모아야 작은 기와집 하나 살까말까했다. 단원 김홍도의 '자리짜기' 그림에서 물레질 하는 부인 옆에서 열심히 돗자리를 짜는 양반의 모습이 조선시대 선비들의 실제 삶이었던 것.

김홍도의 '자리짜기' 민속화 그림(사진=한국콘텐츠진흥원)

김홍도의 '자리짜기' 민속화 그림(사진=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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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야청청(獨也靑靑)하며 안빈낙도(安貧樂道)했다는 기록을 가진 선비들은 따지고보면 다들 집안이 넉넉했던 분들임을 알 수 있다. 흙수저 청춘의 삶이 팍팍한 것은 춘향이와 몽룡이가 데이트하던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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