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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고드름/이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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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뜨고 죽은 사람이 아직 허공을 붙잡고 있듯
 물은 얼어붙으면서 자신의 마지막 의지를 알린다.
 떨어지는 것이 제 모든 행위였음을
 그의 자세가 입증하고 있다.

 캄캄한 어둠이 폼페이의 화산재처럼 내려앉은 밤사이
 헐벗은 채 절규에서 기도까지 그대로 얼어붙었다.
 뛰어내리던 마지막 도약의 눈물까지 녹아 돌이 되었다.
 녹다 말다 얼다 말다
 찬바람과 햇볕이 한쪽 뺨씩 번갈아 어루는 담금질에
 고드름은 낙수 구멍 같은 무표정들을 겨누고 있다.
 용서와 분노가 함께 눅어 붙은 얼굴로
 떨어지는 속도와 녹는 속도 사이에서
 뾰족하게 벼려졌다.

 처마 끝마다 긴 고드름을 달고 있는 건물은
 날개 끝에 핀이 박힌 표본 나비 같기도 하고
 포박된 채 건져 올려 인양되는 선체 같기도 하다.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시는 무섭다. 참 무섭다. 읽으면 읽을수록 무섭다. 처음 읽었을 땐 저 마지막 문장이 좀 떨떠름했다. 사족처럼 여겨져서였다. 그런데 한 번 읽고 다시 읽고 또 읽을수록 그 문장은 지면을 떠나 내 "무표정"한 동공(瞳孔)과 그 너머의 동공(洞空)까지 불태우고 불태운다. 용산이 떠올라서였다. "헐벗은 채 절규에서 기도까지 그대로 얼어붙었"던 그해 겨울, "용서와 분노가 함께 눅어 붙은 얼굴"들, 그 얼굴들이 확확 닥쳐서였다. 어디 용산뿐이랴. 언제부턴가 우리가 사는 세상 곳곳엔 "뾰족하게 벼려"진 "분노"들이 들끓고 있다. 어찌해야겠는가. 함부로 화해를 요청하지 마라. "분노"가 그렇듯 "용서" 또한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죽음으로 내몰렸던 그리고 지금도 어디선가 내몰리고 있을 그들의 몫이니.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영원히 죄진 자들이니.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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