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은 처음에는 관리의 부정이나 모반(謀反)의 정탐을 주요 임무로 삼았지만 차차 민간의 사소한 범죄까지 확대 취급했다. 게다가 사법기관을 거치지 않고 구금(拘禁) ㆍ처형의 권한을 갖게 됐다. 정보와 사법권에 경찰권까지 가진 동창은 사실상 명나라 최고 권력기관이었다.
권력을 장악한 조직은 그대로 두면 점점 더 비대해지기 마련이다. 특히 정보기관은 국가 안보를 절대가치로 내세워 끝없이 팽창하는 속성이 있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의 정보기관인 CIA와 KGB가 경쟁적으로 세(勢)를 불릴 수 있었던 것도 국가 안보를 앞세웠기 때문이다.
명나라 환관들의 정보기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동창으로도 모자라 나중에 서창(西廠)과 내행창(內行廠)이란 조직을 만들어 세를 불렸다. 급기야 명나라 말기의 환관 위충현은 세도가 황제를 능가할 정도였다. 조선 사신 홍익한은 명나라를 다녀와서 "천하의 권세를 가진 첫째는 위충현이고, 둘째는 객씨이고, 셋째가 황제"라고 기록하기도 했다. 객씨는 당시 명나라 황제의 유모로 위충현과 사통한 사이였다.
전필수 증권부장 phils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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