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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동네 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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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응 금융부 차장

박철응 금융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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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가장 가까운 빵집은 대표적인 외식업 그룹의 브랜드를 달고 있다. 좀 더 가면 재벌 그룹에서 갈라져 나온 브랜드 빵집이 있다. 동네에 있는 빵집이지만 '동네 빵집'은 아니다. 매장은 깔끔하고 빵 종류는 다양하며 맛있다. 별로 불만은 없다. 다만 뭔가 좀 허전한 느낌은 든다.

이사 오기 전 동네에는 '동네 빵집'이 꿋꿋했다. 어디나 비슷할 것 같은 식빵 맛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조그마한 점포에 빵 종류도 많지 않았지만 손님들 발길이 꾸준했다. 약자의 선전은 더 돋보이고 애정이 가게 마련 아니겠는가. 그래서 더 맛있게 먹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사를 하게 될 즈음, 결국 그 빵집도 요새 '제2의 치킨집'으로 불리는 동네 카페로 탈바꿈하고 말았다. 그럭저럭 잘 되는 가게로 알았는데 그도 아니었는지, 다른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또 하나의 동네 빵집이 사라졌다는 게 그저 아쉬운 마음이었다.

어릴 적 집 근처에는 '짱구제과'와 '영국빵집'이 쌍벽을 이뤘다. 일요일 아침에 아버지가 "오늘은 양식!"이라고 선언하시면 냉큼 달려가곤 했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마가린(혹은 버터)과 계란, 우유를 사고, 두 곳 중 한 빵집에 들러 식빵과 단팥빵, 소보루빵, 크림빵들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이 항상 즐거웠다.

좀 자라서는 영국빵집이 특별해졌다. 그 빵집에는 한 연예인과 빼닮았는데 그 연예인보다 조금 더 예쁜 '빵집 누나'가 있었다. 그 누나는 빵집에 있을 때가 많지 않았다. 빵을 사러갈 때는 물론이고 지날 때마다 빵집 안을 슬쩍슬쩍 쳐다보곤 했다.
그래서 내게는 그 빵집이 가곡 '그 집 앞'의 그 집 같았다.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오히려 눈에 띌까 다시 걸어도 되오면 그 자리에 서졌습니다'. 생각지 않은 때, 예를 들면 꾀죄죄한 모습으로 동네 목욕탕에 가는 길에 이상스레 자주 만났다는 게 불운이라면 불운이었다.

이제는 동네 빵집, 동네 슈퍼마켓, 동네 목욕탕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지난 23일 동반성장위원회는 제과점업을 비롯한 7개 업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재지정했다. 반경 500미터 안에는 대기업 계열 프랜차이즈 빵집이 들어서지 못한다. 2013년 이 제도가 시행된 이후 동네빵집 수는 늘었고 매출도 증가했다고 한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슬프다"는 점에서, 반길 만한 일인 것 같다. 빵집누나는 반듯한 회사원과 결혼했고 동네 미술학원을 차려서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박철응 금융부 차장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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