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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哭栗의 更板精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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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훈구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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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오후의 홍대 앞을 걷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강남의 가로수길, 이태원의 경리단길도 인기가 있지만 청년 문화의 다양성이 숨 쉬는 홍대 앞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천편일률적 소비문화를 극복하고 다양성을 근간으로 한 대안문화가 이 거리의 트레이드마크로 정착한 데는 인디밴드를 중심으로 꽃핀 클럽문화가 큰 역할을 했다. 지금은 태동기인 1990년대 말과 달리 많이 변질되기도 했지만 아직도 어둑한 지하실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무명의 음악가들이 잠복근무하고 있다.
작년 큰 인기를 끌었던 라이브 클럽 데이가 1주년을 맞이해 화려한 라인업을 공개했다. 삐삐밴드, 허클베리핀 등 인디 1세대 그룹을 시작으로 데드버튼즈, 장미여관 등 현재의 인디 음악을 이끄는 70여개 팀이 대기 중이다. 이들 중 가장 눈에 띄는 밴드는 단연 크라잉넛이다. 크라잉넛이 데뷔한 1990년대 말은 대중음악 수요층이 10대 중심으로 재편돼 메인스트림에서 새로운 음악을 할 수 있는 길이 거의 차단되고 있었다. 막다른 길에 들어선 채 지루한 동어반복을 거듭하던 한국의 록음악은 크라잉넛이라는 대안을 만나게 된다.

흙수저 록그룹 크라잉넛은 홍대 앞 드럭이라는 창고에서 탄생했다. 그들에겐 타고난 음악적 감수성도 좋은 악기를 살 돈도 든든한 기획사도 없었다. 허기를 음악으로 달래며 외환위기를 맞이한 1997년, 대표곡 '말달리자'를 발표했다. 국민이 모두 움츠러들고 얼어붙었던 시절 크라잉넛의 발광에 가까운 아우성은 이 땅의 청춘들에게는 슬픔마저 집어삼키는 환희의 송가였다. '닥쳐, 닥쳐, 닥치고 내 말 들어'라는 도발적 가사와 펑크라는 단순한 장르로 무장한 다섯 악동은 기존의 음악 질서를 전복하며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크라잉넛을 규정하는 단어 중 하나는 무개념이다. 시대가 개념이 없으니 어찌 보면 이들의 무개념 정신은 필연이었을 것이다. 때로는 주류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나 그들은 한 번도 출발 선상에 섰을 때의 진심을 잊은 적이 없다.
라이브 클럽 데이 1주년 공연에 가고 싶지만 나이를 생각하라는 주위의 만류를 받아들여 집에서 앰프의 볼륨을 높이고 크라잉넛을 듣는 것으로 대신한다. 나는 이들의 음악에서 고통의 실존적 승화를 느낀다. 과장이 아니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방부제 역할을 해온 크라잉넛. 청춘은 썩지 않는다.

노래하라, 哭栗樂團(곡률악단)의 更板精神(갱판정신)을.





임훈구 편집부장 keygri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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