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편일률적 소비문화를 극복하고 다양성을 근간으로 한 대안문화가 이 거리의 트레이드마크로 정착한 데는 인디밴드를 중심으로 꽃핀 클럽문화가 큰 역할을 했다. 지금은 태동기인 1990년대 말과 달리 많이 변질되기도 했지만 아직도 어둑한 지하실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무명의 음악가들이 잠복근무하고 있다.
흙수저 록그룹 크라잉넛은 홍대 앞 드럭이라는 창고에서 탄생했다. 그들에겐 타고난 음악적 감수성도 좋은 악기를 살 돈도 든든한 기획사도 없었다. 허기를 음악으로 달래며 외환위기를 맞이한 1997년, 대표곡 '말달리자'를 발표했다. 국민이 모두 움츠러들고 얼어붙었던 시절 크라잉넛의 발광에 가까운 아우성은 이 땅의 청춘들에게는 슬픔마저 집어삼키는 환희의 송가였다. '닥쳐, 닥쳐, 닥치고 내 말 들어'라는 도발적 가사와 펑크라는 단순한 장르로 무장한 다섯 악동은 기존의 음악 질서를 전복하며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크라잉넛을 규정하는 단어 중 하나는 무개념이다. 시대가 개념이 없으니 어찌 보면 이들의 무개념 정신은 필연이었을 것이다. 때로는 주류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나 그들은 한 번도 출발 선상에 섰을 때의 진심을 잊은 적이 없다.
노래하라, 哭栗樂團(곡률악단)의 更板精神(갱판정신)을.
임훈구 편집부장 keygri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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