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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복면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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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훈구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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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가리고 노래를 부른 뒤 전문성과 객관성이 결여된 판정단에 의해 승패가 결정되는 음악 경연에서 오랫동안 왕좌를 지켜온 뮤지컬 배우가 홍대 인디밴드의 보컬로 추정되는 로커에게 자리를 양보했다(나는 이 TV 프로그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꼬박꼬박 챙겨보는 딸과의 소통을 위해 보는 편이다). 도전자는 신해철이 넥스트 시절 작곡한 '라젠카 세이브 어스'를, 가왕은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을 택했다. 두 곡의 스타일을 볼 때 승부는 이미 선곡에서 갈렸다.

신해철은 대학가요제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룹 넥스트 해산 후 '비트겐슈타인'이라는 한국 대중음악 사상 가장 '건방진' 음반을 통해 자신이 철학을 전공한 인텔리겐치아 양아치임을 선언하듯 노래했다. 유재하는 조용필과 김현식의 그늘에 '가리워진' 가수였다. 솔로의 길을 택한 그는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한국 가요사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음반을 통해 자신의 발라드가 클래식에 토대를 두고 있음을 수줍게 고백하듯 노래했다. 이 둘은 이렇게 다르다.
그런데 굳이 둘 중의 한 명을 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후자다. 한국의 발라드가 더 이상 서양의 발라드에 열등감을 갖지 않게 된 것은 온전히 유재하 덕분이다. 불우했던 그의 생은 찬란한 사후로 보상받는다. 그의 이름을 내건 음악제가 열리고 실력파 가수들이 하나둘 뒤를 따랐다. 발라드 하면 떠오르는, 노래 좀 부른다는 가수 중에 유재하의 영향 아래서 자유로운 이는 없다. 그들은 서로 유재하에게 영향받았음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한국 가요사에서 김현식(1958~1990), 유재하(1962~1987), 김광석(1964~1996), 신해철(1968~2014)의 존재는 특별하다. 이들에게는 때 이른 죽음 말고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술이다.

김현식의 음주는 전설처럼 내려온다. 퍼마시다 퍼마시다 결국 간 경화로 짧은 삶을 마감했다. 술값 잘 내기로 유명했던 유재하는 술 취한 친구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김광석은 바쁜 친구의 스케줄 때문에 술 약속이 펑크 나자 집에서 아내와 술 마시고 세상을 등졌다(지금까지는 그렇게 알려졌다). 신해철은 '쓸개 수술' 후 주량이 줄었다며 안타까워하면서도 '닥치고 마셔'를 연발했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육체적으로, 또 한 번은 타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짐으로써 정신적으로 죽는다는 문학평론가 김현의 말대로라면 이들은 죽지 않았다. 그들은 가왕이 아니라 가객들이다. 이들을 기리며 술 한잔 해야겠다. 오늘 밤의 사운드트랙은 '넋두리' '사랑하기 때문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절망에 관하여'이다.





임훈구 편집부장 keygri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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