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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꿈꿨지만 그곳은 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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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정글로 내몰린 '거리의 아이들'…성매매, 집단폭력, 암매장 등 끔찍한 현실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부천에서 '미라' 형태로 숨진 채 발견된 여중생 이모양의 사인(死因)은 가출을 둘러싼 부모의 폭력이었다. 목사인 이모(48)씨는 지난해 3월 가출한 뒤 돌아온 이양을 빗자루와 빨래건조대로 때려 숨지게 했다.

이씨는 전처 사망 후 재혼했는데 이양과 이양의 오빠는 '계모'와 갈등을 빚으면서 가출했다. 부모는 가출의 원인을 해소하기는커녕 폭력으로 화답했다.
가출을 선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가출 청소년들을 노리는 이들도 있다.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들을 자극해 본인들의 목적 달성에 이용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집을 떠난 아이들은 참담한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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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처럼 말해 집을 나오게 해야 한다."

2014년 3월 '가출팸(가출 패밀리)' 일당은 여고생 A양(당시 15세)에게 덫을 놓았다. 가출팸 일원인 김모씨는 가짜 남자친구 역할을 맡았다. A양에게 관심 있는 것처럼 접근했다. 목적은 따로 있었다. A양이 집을 나오자 가출팸 일당은 돌변했다.
A양에게 조건만남을 시켰고, 끔찍한 폭력도 이어졌다. 끓는 물을 팔에 붓고, 소주 2병을 강제로 마시게 했다. 구타는 끊임없이 계속됐다. A양은 사실상 감금된 상태에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다 숨을 거뒀다. 가출팸 일당은 시체를 불로 태워 훼손한 뒤 암매장했다.

4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청소년 10명 중 1명꼴인 11.0%가 한 차례 이상 가출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출 원인은 부모 등 가족과의 갈등이 67%로 가장 많았다. 눈여겨볼 부분은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라는 응답이 9.5%로 두 번째로 많았다는 점이다.

자유로운 삶을 꿈꾸지만, 당장 먹고 사는 걱정이 현실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막막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을 모아 가출팸을 형성한다. 가출팸은 본래 가출한 청소년들이 모여 생활하는 공동체를 의미하는 말이다.

'부산·경남 일행 구해요.' '천안 일행 구합니다.' '경기·서울·인천·부평 일행 구해요'…. 2000명 가까운 회원을 지닌 인터넷 '가출 카페'에는 이처럼 새로운 가출팸을 찾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스마트폰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가출팸 만남이 이뤄진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인천 부평역 부근 등이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다. 화장 짙은 10대 여성들과 또래 남성들이 스스럼없이 현장에서 만나 새로운 가출팸을 형성한다.

가출팸을 희망하는 이들은 가족처럼 지내는 관계를 원하지만, 현실을 직시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가출팸은 또 다른 사회이자,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정글이다. 힘이 있거나 돈이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다. 돈을 벌어오지 못하면 왕따를 당하거나 집단 폭행에 시달릴 수 있다.

그들만의 폐쇄된 공간, 그 속에서 폭력은 더 끔찍할 수밖에 없다. A양 경험은 극단적인 사례로 보일 수 있지만, 유사 사례가 또 있다는 점이 눈여겨볼 대목이다.

2012년 4월에도 한 가출 여학생이 가출팸 구성원 9명에게 집단 구타를 당한 뒤 암매장당한 사건이 있었다. 가출팸 구성원들은 범죄에 점점 무감각해진다. 여성은 성매매 대상으로 내몰리고, 남성은 조직폭력 범죄의 구성원으로 흘러들어 가기도 한다.

'십대여성인권센터' 관계자는 "가출한 여자 청소년은 일할 곳이 많지 않다. 애써 찾아도 부모 동의가 필요하다는 말에 돌아설 수밖에 없다"면서 "그들의 어려운 처지를 이용해 성매매로 끌어들인다"고 지적했다.

서울경찰청은 지난해 7월 20대 남녀 3명을 '성매매 알선'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은 가출 여고생 4명으로 가출팸을 꾸린 뒤 지방 대도시를 돌며 성매매를 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하루 최소 4번 성매매를 하도록 한 뒤 횟수를 채우지 못하면 돈을 토해내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 전주 덕진경찰서는 2014년 8월 학생들의 집단 패싸움을 조사하다가 시내 원룸촌을 중심으로 100명 정도로 구성된 가출팸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가출 청소년들은 지역 조폭과 연계해 세를 불리면서 금품 갈취와 폭력을 일삼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가출팸에 한 번 들어오면 마음대로 나가는 것도 쉽지 않다. 가출을 하지 않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가정불화, 부모의 폭력 등 문제 원인이 해소되지 않으면 한 번 가출한 청소년은 다시 가출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 기관은 전국 주요 지역에 가출 청소년의 의식주를 도와주는 '쉼터'를 마련해 놓았다. '1388' 상담전화를 통한 24시간 상담시스템도 갖췄다. 하지만 제도적인 개선만으로 가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서울의 한 청소년 쉼터 관계자는 "아이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서 가출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 부모의 열린 자세가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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