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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축구와 사람 ⑬] 신태용 감독과 올림픽

최종수정 2016.02.01 13:59 기사입력 2016.02.0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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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 감독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신태용 감독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25년 전이다. 대한민국 올림픽축구대표팀은 1991년 1월 15일부터 테네리페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2월 10일에 귀국했다. 테네리페는 대서양에 있는 카나리아군도에 속한 섬으로 스페인령이다. 훈련의 목적은 1992년에 열리는 바르셀로나올림픽 최종예선에 대비하는 데 있었다. 올림픽 팀은 최종 엔트리를 정하기 전이었다.

전지훈련은 데트마어 크라머(Dettmar Cramer) 총감독이 지휘했다. 서정원·곽경근·노정윤·최문식·이임생·김봉수 등 당대의 유망주들이 주요 선수였다. 이 가운데 신태용도 있었다. 그때 나이 스물한 살. 그는 나중에 프로축구 리그에서 명성을 떨치지만 이때는 스타가 되기 전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바르셀로나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경계에 선 선수였다.
선수단은 1월 13일에 김포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축구팬들의 관심은 매우 컸다. 젊은 기자들은 출국 인터뷰를 하기 위해 공항으로 몰려갔다. 나도 ‘똑딱이’ 필름 카메라와 수첩, 녹음기를 들고 나갔다. 다른 기자들처럼 크라머 총감독과 서정원·노정윤·곽경근 등 스타 선수들을 인터뷰했다. 이 무렵 곽경근은 대형 스트라이커 재목으로 주목을 받았다.

필요한 인터뷰를 마칠 무렵엔 올림픽 팀의 출국 시간이 거의 다 됐다. 녹음기를 끄려는데 누군가 다가와서 나를 불렀다. “진석이 형!” 두 눈이 반짝거렸다. 분명히 기억한다. 신태용이었다. 선수가 기자에게 '형'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그는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잘 다녀오겠다. 다녀와서 인사 드리겠다”고 했다. 나는 그때까지 신태용을 인터뷰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신태용은 갑자기 바짓단을 들어 올리더니 양말을 반쯤 벗어 보이면서 말했다. “제가 지금 발목이 아프거든요. 사실은 부상 때문에 뛸 수 없는 상태인데 정신력으로 버티는 거예요.” 그의 말이 신문에 기사가 되어 나가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예나 지금이나 ‘부상 투혼’은 기자를 꾀기 좋은 키워드다. ‘머리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곧 그를 잊었다.
지난 31일 새벽,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최종예선을 텔레비전 중계로 보고 나서 문득 그를 생각했다. 한국은 일본에 2-3으로 역전패했다. 두 골을 먼저 넣고 세 골을 내리 빼앗겼다. 한국의 축구 대표 팀이 이런 경기를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축구팬들이 충격을 받을만했다. 나와 함께 경기를 본 아들도 말없이 제 방에 들어갔다.

이튿날 신문을 살피니 비판 보도가 여럿 눈에 띄었다. “이기고 있는데 공격만이 최선이었나”, “자만심”, “정신력 부족”, “한일전의 의미", "축구 팬과 국민들의 분노” 같은 기사가 보였다. 나는 공감하지 않았다. 기자가 화가 나서 쓴 기사는 아닐까. 나는 자존감이 강하고 집요한 신태용, 승부에 강한 신태용, 그가 지휘하는 팀이 언론에서 비판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일을 그르쳤다고 보지는 않았다.

우세한 경기에서는 당연히 골을 더 넣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페어플레이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 나간 대표 팀은 토고와의 첫 경기에서 2-1로 앞선 후반 막판에 얻은 프리킥을 뒤로 돌렸다. 얼마나 야유를 받았는지, 그날 프랑크푸르트에서 경기를 본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낯이 뜨거울 정도였다. 올림픽 팀은 옳은 경기를 했다.한 골을 더 넣어 3-0을 만들었다면 4-0이나 5-0도 가능했을지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올림픽 티켓을 따고 돌아온 팀이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다니, 신태용과 선수들이 안됐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을 망치고 돌아온 대표 팀에 날아간 '엿'은 이번 일에 비하면 약과다. 하지만 신태용은 생명력 강한 사나이다. '난놈'을 자처하는 승부사의 속이 누구보다 상했으리라. 그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나는 신태용과 올림픽 팀이 이 모든 비판과 수모를 딛고 일어서리라고 본다. 우리 팀은 더 강해질 것이다.

huhball@


※ 지난해부터 『아시아경제』에 ‘축구와 사람’을 연재하고 있다. 그 동안 조광래, 허정무, 최강희, 홍명보 등에 대해 썼다. 나의 게으름 때문에 진행이 느려 12회에 최강희를 주제로 쓴 뒤 오래 쉬었다. 13회째를 쓸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올림픽 최종예선을 관전한 다음 급히 쓰게 되었다. 사실 신태용은 계획에 없었다. 슈틸리케가 다음 순서였다. 그러므로 이 글은 외전(外傳)이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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