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으니 반사 신경만 번뜩인다. 거실 바닥의 낙오자들을 발견하면 전대엽이 명령하기 전 손발이 먼저 움직인다. 허리 굽은 어머니가 틈만 나면 거실 바닥을 훔치듯 중년의 아들은 자질구레한 집안일에 시나브로 속박된다. 그런 심성이 김현승의 시 '아버지의 마음'을 닮았다.
현실의 아버지는 낙엽 대신 양말 쪼가리를 줍고, 불침번처럼 현관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살피고, 벽에 못을 꽝꽝 박는다. 회사에서 깨지고 뭉개지고 상처 입은 영혼을 겨우 눕힌 거실에서조차 널브러진 무언가를 치우느라 손발을 꼼지락댄다. 바로 그 거실에서 마눌님의 레이저 같은 시선을 견디며 낮잠을 자다 깨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울다 웃다 하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중년의 모습이다.
남자가 나이를 먹으면 눈물이 많아지는 것은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의 역전현상에서 비롯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남자는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여자는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분비량이 늘어난다. 그 바람에 중년 남성은 외모까지 변한다. 근육은 탄력을 잃고 가슴은 축축 늘어지고 하체는 비쩍 마른다.
옳거니!
중년 남성들이 주말마다 소파에서 빌빌거리는 데는 저런 속사정이 있는 거다. 건강과 젊음을 유지하려는 경건한 의식(儀式)인 거다. 그러니 부디 레이저 같은 시선으로 째려보지 마시길.
이정일 산업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