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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구조조정과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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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필수 증권부장

전필수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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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연속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 대표이사한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 회사는 책임경영이란 게 없는 것 같습니다."

A회장의 핵심 스태프였던 B임원은 이렇게 말하고 회사를 떠났다. 측근이 회사에 비전이 없다면서 떠나는 상황이었지만 A회장은 C대표에게 끝내 책임을 묻지 않았다. C대표가 맡고 있는 회사에 대한 구조조정도 하지 않았다.
누적 적자에 모회사 자금뿐 아니라 회장의 사재까지 들어갔는데도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표이사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만성 적자 회사 하나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결단력에 실망하고 떠난 B임원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했다. C대표가 맡고 있는 회사는 전방산업인 조선업의 불황으로 적자를 언제 벗어날지도 모를 만큼 힘든 상황이다. 도대체 이 양반이 뭘 믿고 그랬나 싶어 B임원처럼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믿고 맡겼는데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 책임을 묻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게다가 안 되는 사업이라면 정리를 하는 게 다른 계열사들을 위해서도 도움이 될 것 같은데…."

A회장은 대답 대신 B임원에게 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당신 C대표 손을 봤느냐. 당신처럼 펜대 굴리던 손이 지금은 전형적인 막일을 하는 사람 손이 됐다. 연대보증까지 서며 모든 것을 다 바친 사람을 내가 어떻게 내칠 수 있겠느냐."
사업의 장래성을 보고 투자를 결정한 것은 오너인 자신이니 업황이 좋지 않은 부분은 자신이 책임지는 게 맞지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한 전문경영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답변이었다.

"업황이 안 좋다면 구조조정을 해서라도 경영효율화를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다시 이어진 우문에 A회장은 "직원들 하나하나가 처자식이 있는 가장들"이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가장의 실직으로 인한 한 가정의 절망을 본인이 어린 시절 겪어봤기에 자신의 회사에서만큼은 구조조정을 하고 싶지 않았다고 A회장은 덧붙였다.

물론 상황이 더 안 좋아진다면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A회장도 안다. 실제 그는 몇 해 전 자금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핵심 계열사를 매각하기도 했다.

현금을 쌓아놓고도 업황이 좋지 않다고 선제 구조조정을 하는 게 당연시되는 세상에 살다 보니 구조조정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는 당연한 말조차 낯설게 들렸던 걸까.





전필수 증권부장 phils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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