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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덕의 디스코피아⑧] 도어즈(The Doors) -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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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 잃은 선원들의 분투

[아시아경제]
더 도어즈의 Other Voices

더 도어즈의 Other Voi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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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즈(The Doors)만큼 프론트맨의 그림자가 짙은 밴드도 드물다. 밴드의 상징이자 얼굴마담이 사라지면 나머지 멤버들은 뿔뿔이 흩어지는 게 보통인데, 세 멤버들은 짐 모리슨(Jim Morrison)이 죽고 해를 넘기기 전에 함께 새 앨범을 냈다. '모리슨이 없으니 이제 내 능력을 보여주리라'는 야심이 발휘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이대로 주저앉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녹음에 기약 없이 늦거나 무대에서 기행을 벌이는 일이 갈수록 잦았던 모리슨에게 느꼈던 짜증과 불만을 털고 홀가분하게 작업해보자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키보디스트 레이 만자렉(Ray Manzarek)과 기타리스트 로비 크리거(Robby Krieger), 드러머 존 덴스모어(John Densmore)는 신입 멤버를 받지 않고 새 앨범을 작업했다. 공석이 된 보컬은 만자렉과 크리거가 번갈아 가며 맡았다. 앨범의 몇 곡은 모리슨이 죽기 전에 이미 손발을 맞춰본 곡이라고 한다. 수록된 여덟 곡에서 이들은 모리슨이 없는 상태에서도 지금까지 해왔던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인 디 아이 오브 선(In The Eye of Sun)”을 여는 혼란스러운 전자음과 몽롱한 기타솔로는 이들이 틀림없는 도어즈임을 확인시킨다.
싱글로도 발매된 “타이트로프 라이드(tightrope ride)”가 백미다. 덴스모어의 드럼에 맞추어 만자렉의 오르간과 크리거의 기타가 현란하게 뒤섞이는 곡의 말미는 앨범의 하이라이트다. 그동안 노래할 일이 없었던 만자렉의 보컬도 꽤 멋지다. 전임자를 잊게 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렇게 노래를 잘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모리슨이 전작에 싣기를 거부했던 “다운 온 더 팜(Down On the Farm)”의 멜로디는 재미있지만 너무 밋밋한 크리거의 보컬이 아쉽다. 많은 곡들을 대체로 크리거가 부르고 있는데, 어쩔 수없이 모리슨의 빈자리가 크다. 그가 지녔던 카리스마, 시적인 가사, 걸출한 보컬이 대체되지 못한 인상이다. 대신 모리슨 중심으로 이루어진 도어즈의 역사에서 과하게 주변화된 멤버들의 특징이 중심에 선다. 덴스모어의 찰랑거리는 드럼, 크리거의 끈적한 기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주술을 부리는 것 같다”던 만자렉의 키보드 등 남은 멤버들의 매력은 여전하다.

'아더 보이시스'는 “모리슨 사후에는 이런 앨범도 있었다”는 식의 짧은 언급에 그치기 때문에 도어즈 팬에게도 존재가 희미하다. 깔끔한 완성품이지만 만든 자도 듣는 자도 모리슨의 빈자리를 너무 크게 의식하는 바람에 음악과 관계없이 절하된 것 같아 아쉽다. 앨범의 제목을 부재를 의식한 'Other Voices'가 아닌 지금·여기 선 이들을 강조한 'The Voices'로 했다면 어땠을까. 여전히 독창적인 스타일의 연주와 때때로 번뜩이는 매력에도 불구하고 푸대접을 받는 처지는 안타깝다. 물론 도어즈의 전작들만큼 걸작은 아니지만 평작과 수작의 사이쯤에 걸친, 아직 젊음과 재능이 있고 경험이 쌓인 밴드가 잘 다듬어 낸 멋진 작품. 그럼에도 불구하고 “짜장면 없는 중국집”이나 “호랑이 없는 동물원” 같은 느낌이 든다면 어쩔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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