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코 좀 하는 형님들의 수줍던 과거
특히 비틀즈(The Beatles)의 그림자가 짙다. 다섯 번째 트랙인 ‘인 마이 오운 타임(In My Own Time)’은 ‘닥터 로버트(Dr. Robert)’와 ‘택스맨(Taxman)’의 카피버전이며, 히트곡인 ‘뉴욕 마이닝 디재스터 1941(New York Mining Disaster 1941)’ 역시 존 레논 커버곡처럼 들린다.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은 모리스 깁(Maurice Gibb)에게 이 곡이 너무 비틀즈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환각적인 느낌을 주는 재킷도 비틀즈의 스타일과 비슷한데, <리볼버(Revolver)>(1966)의 커버를 만든 베이시스트 클라우스 부어만(Klaus Voorman)이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비지스는 데뷔 앨범을 흉내로만 채우지 않았다.
사이키델릭 팝과 발라드의 미묘한 경계에 있는 이 앨범은 엄밀히 말해 비지스의 첫 작품은 아니다. 당시 비지스는 이미 호주에서 데뷔한 후 영국과 미국 팝 음악계를 노크하던 중이었다. <비지스 퍼스트>라는 제목은 아마도 세계무대에 나서는 ‘첫’걸음이란 의미일 것이다. 데뷔작이 당시 유행에 충실했던 건 세계의 주류에 진입해야했던 그들의 현실적인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앨범을 듣다보면 굳이 유행을 따르지 않았어도 그들이 결국엔 성공했으리란 확신이 든다. 앨범 대부분의 곡에서 수줍은 느낌의 서정적인 멜로디가 돋보이는데, 멜로디 메이킹 능력이야말로 장르와 유행에 관계없이 유효한 재능이기 때문이다.
이 앨범에는 이들의 행선지가 디스코가 되리라는 어떤 조짐도 없다. 그럼에도 디스코 시대의 군계일학으로 자리매김한 데에는 이들의 작곡 능력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비지스 퍼스트>는 그 잠재력을 확인시켜준 레전드의 멋진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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