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우리는 초대형 금융사고의 위험 가능성 하나하나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우리의 태도는 지나친 걱정으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볼 때 파생상품은 금융계의 대량 살상무기입니다. 파생상품은 그 위험을 순간적으로는 감출 수 있어도 늘 치명적인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84)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2003년 주주들에게 이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당시만 하더라도 각종 금융 파생상품은 엄청난 수익률을 자랑하며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통하던 때였다. 예컨대 실제 담보가치는 100원밖에 안 되는 주택금융상품을 바탕으로 총 500원이 넘는 가치를 갖는 파생상품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버핏의 경고가 옳았음이 드러났다. 2007년 미국에서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기지(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주택자금을 빌려주는 대출상품) 사태는 2008년 유럽을 거쳐 전세계적인 금융위기로 확산됐다. 문제는 지금까지도 이 '대량 살상무기'가 금지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을 분석한 1부에서는 당시의 숨가빴던 상황을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재연해나간다. 2008년 6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의 회장이었던 리처드 풀드(69)가 "최악의 고비는 넘겼다"는 말을 한 지 3개월 뒤에 이 158년의 전통을 자랑한 투자기관은 파산한다. 이어 골드만삭스, JP모건, 메릴린치 등 다른 대형 투자은행들이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덩달아 글로벌 금융시장도 요동쳤다. 이 와중에도 고액의 연봉을 챙긴 은행 경영진들, 이들의 방어벽이 되어 준 금융당국, 로비에 좌우되는 신용평가 기관 등이 모두 자신의 이익을 앞세워 금융위기를 일으키는 데 한 몫을 했다. 특히 '손실은 사회화하고 이익은 전과 다름없이 사유화한다'는 은행들의 철학이 더욱 돋보이는 계기가 됐다.
현재와 같은 금융구조에서는 최악의 경우 국가 부도 사태도 얼마든지 연쇄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이미 2006년 이후 국가 부채가 50% 이상 증가한 미국은 사실상 국가파산 상태이며,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는 물론이고 남아메리카와 러시아도 이러한 위기 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책에서는 저자 중 한 사람인 마르크 프리드리히가 2001년 국가 파산이 발생한 시점에 아르헨티나에 체류한 경험담을 들려준다. 당시 아르헨티나 정부는 1000억 달러 규모의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으며, 물가는 무섭게 뛰었다. 요구르트 하나의 가격이 3개월 만에 2달러에서 3달러로 올랐고, 전화 요금은 전세계에서 가장 비쌌다. 급기야 성난 군중들이 거리로 몰려나왔고, 열흘 사이(2001년 12월20일~2002년 1월1일)에 대통령이 5명이나 바뀌게 됐다. "국가는 절대 파산하지 않는다"는 신화는 이미 오래 전에 깨졌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거대한 약탈 / 마티아스 바이크, 마르크 프리드리히 / 송명희 옮김 / 가치창조 / 1만5000원)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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