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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만리]한발한발 출렁길…산막이옛길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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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이옛길은 다양한 이야기와 재미들로 꾸며졌다. 옛길 초입의 소나무 숲에는 출렁다리가 놓였고 나무 덱 길의 곳곳에는 전망대가 놓였다. 덱 바닥을 투명유리로 만들어 아슬아슬한 고공전망대도 있다.

산막이옛길은 다양한 이야기와 재미들로 꾸며졌다. 옛길 초입의 소나무 숲에는 출렁다리가 놓였고 나무 덱 길의 곳곳에는 전망대가 놓였다. 덱 바닥을 투명유리로 만들어 아슬아슬한 고공전망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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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기자]‘사오랭이 지나 괴강 물은 물빛 산그림자로 흔들린다./배암 같은 다래 덩굴들 산허리를 감고 돌아 어디로 가는가/어슬렁 어슬렁 호랑이 발자욱 물 마시러 내려온 도끼 노루 다래 순 베어 물고/괴강 물 따라 빙글빙글 돌고 돌다 어지러워 산막이옛길을 토해낸다.’이인순(산막이옛길)
옛길을 걷습니다. 구름이 걸리는 산자락은 첩첩이 이어지고 적당한 오르내림의 길은 부드럽습니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풍경은 빼어납니다. 활엽수 숲은 짙고 시원합니다. 타박타박 걷는 동안에는 몸과 마음이 다 그 길에 녹아내립니다. 옹달샘으로 나온 다람쥐는 물 한 모금 삼키고 제 갈 길로 분주합니다. 하늘 담긴 호수에 조각구름 같은 배 한 척, 긴 물살을 그으며 흘러가고 있습니다. 충북 괴산의 산막이옛길. 괴산을 흘러가는 달천을 가둔 괴산호로 앞이 막히고, 험준한 군자산이 뒤를 막고 있는 오지 중의 오지 '산막이마을'로 드는 벼랑길입니다. 괴산호에 바짝 붙어 맑은 물빛을 내려다보며 걷는 그런 길입니다.

산막이마을은 조선시대부터 오지 중의 오지였다. '귀양살이'에 딱 맞는 곳이라는 뜻의 적소(謫所)라 불리기도 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었던 노수신(1515~1590)의 유배지이기도 했다.
고공전망대에 서면 굽이친 괴산호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고공전망대에 서면 굽이친 괴산호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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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사화에 휘말려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노수신은 고난의 세월을 견뎌 훗날 영의정까지 올랐다. 산막이마을이 다시 역사 위로 올라온 것은 노수신의 10대손인 노성도라는 선비 때문. 노성도는 달래강변의 깊은 산과 벼랑으로 둘러친 산막이마을 부근의 풍광에 반해 아홉 곳의 절경에 저마다 이름을 짓고는 '연하구곡(煙霞九曲)'이라 칭했단다.
그러나 연하구곡은 1957년 괴산댐이 준공되면서 물에 잠겨 사람들의 기억에서 차츰 잊혀졌고 그저 '전설 속의 절경'으로만 남았다. 더불어 산막이마을로 드는 길도 물에 잠겨 끊어졌다. 주민들은 급기야 산허리춤에다 가늘고 긴 벼랑길을 냈다. 토끼 한 마리가 겨우 지나갈 만한 위태위태한 산길이었다. 이렇게 잊혀졌던 산막이마을 가는 옛길이 몇 해 전 복원됐다.
산막이 옛길 등잔봉 등산로에서 마난 괴산호와 한반도지형

산막이 옛길 등잔봉 등산로에서 마난 괴산호와 한반도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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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를 위해 만든 길이니만치 산막이옛길은 다양한 이야기와 재미들로 꾸며졌다. 옛길 초입의 소나무 숲에는 출렁다리가 놓였고 나무 덱 길의 곳곳에는 전망대가 놓였다. 덱 바닥을 투명유리로 만들어 아슬아슬한 고공전망대도 있다.

산막이옛길을 걷는 방법은 두 가지다. 산책길처럼 편안한 편도 3㎞ 남짓한 벼랑길을 따라 산막이마을까지 간다. 이 길은 주말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한적한 산책을 즐기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주중엔 그야말로 전국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운치 있는 길이다. 노루샘에서 등잔봉(450m)과 천장봉(437m)을 잇는 등산코스가 또 하나다. 등잔봉에 오르면 산막이마을과 한반도 지형을 싸고도는 달천의 비경을 맛볼 수 있다. 등산길은 산막이마을까지 3시간가량 걸린다.

사오랑마을을 뒤로 하고 옛길에 든다. 괴산호가 저만치 반짝 얼굴을 드러낸다. 차돌바위나루를 지나면서 산길이 시작된다. 맨 먼저 만나는 것은 산막이옛길 명소 중 하나라는 고인돌쉼터와 연리지.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한 나무처럼 자라는 연리지는 남녀 사이의 사랑 혹은 부부애를 상징한다. 사랑이 이뤄진다는 말 때문인지 그 앞에 서서 사진을 찍는 연인들도 많다.
옛길에서 바라본 괴산호의 여유로운 풍경

옛길에서 바라본 괴산호의 여유로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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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길을 지나 첫 전망대에 서면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계곡을 잇는 출렁다리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건너지만 중년의 여성들은 마냥 즐거운 모양이다. 출렁다리 우회도로에는 정사목(情事木)이 있다. 이름대로 두 소나무가 사랑을 나누고 있는 모습. 이처럼 산막이옛길은 곳곳에 이야깃거리를 숨겨놓았다.
노루샘에 서면 산책길과 등잔봉 등산로 중 택해야 한다. 한적함을 원하면 등산로다. 그 대신 살짝 힘듬은 각오해야 한다. 등잔봉을 조금 지나면 괴산호 한가운데 자리 잡은 한반도 지형을 만날 수 있다. 등잔봉은 옛날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간 아들을 위해 등잔불을 켜놓고 100일 기도를 올려 효험을 봤다 해서 붙은 이름이란다.

산책코스로 들면 연화담과 세상의 근심 걱정을 모두 잊는다는 망세루가 이어진다. 망세루는 호수 양쪽을 모두 볼 수 있을 만큼 전망이 좋다. 1950년대까지 호랑이가 살았다는 호랑이굴과 매바위, 그리고 여우비바위굴을 지나면 앉은뱅이약수에 닿는다. 산막이옛길의 유일한 식수다. 옛날에 앉은뱅이가 이곳의 물을 마시고 벌떡 일어났다는 전설 한 자락이 적혀 있다.
산막이 옛길에서 명소중 명소인 고공전망대.

산막이 옛길에서 명소중 명소인 고공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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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찬바람이 나온다는 얼음바람골을 내려서면 호수 전망대다. 넓은 쉼터를 마련해 놓은 전망대는 마치 공원의 야외카페 같다.

산막이옛길이 무엇보다 빼어난 것은 짙은 숲 터널을 지나면서 맑은 괴산호의 물을 내려다보면서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햇볕이 들지 않을 정도로 우거진 활엽수의 숲속에서 물을 바라보며 걷다보면 몸과 마음이 온전히 길에만 집중된다.

괴음정과 함께 멋드러진 풍광을 선사하는 고공전망대에 섰다. 3m의 강화유리로 만들어진 전망대에서 깎아 지른 암벽과 새파란 물 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은 오금을 저리게 한다.

이제 길의 종점이 그리 멀지 않다. 진달래능선을 지나면 저만치 솔밭 아래로 산막이나루터와 마을이 보인다.

주차장부터 산막이마을을 지나 복원된 노수신 유배지까지는 3㎞ 남짓으로 느긋하게 걸으면 1시간30분쯤 걸린다. 돌아나가는 길 유람선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코스가 길지 않으니 걷는 편이 더 낫다. 똑같은 길을 걷더라도 갈 때와 올 때 바라다보이는 경치는 전혀 다르다.
등잔봉 등산로에서 바라본 괴산호와 첩첩이어진 산

등잔봉 등산로에서 바라본 괴산호와 첩첩이어진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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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이옛길 끝머리인 유배지에서 한적한 길을 따라 조금 더 가면 괴산호 물길 건너 또 하나의 걷는 길이 시작된다. 바로 '충청도 양반길'이다. 옛날 양반들이 과거 보러 가던 그 길을 따라 계곡과 강변을 걷는다. 갈론마을에서 시작하는 충청도 양반길은 아직 인적이 드물고 때도 묻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 딛지 않아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흙길의 탄성도 살아 있다.

순환해 제자리로 돌아오는 전체 코스는 길게는 6시간, 짧게 돌면 4시간쯤 걸리는데, 갈은구곡 따라 오르는 길과 선유대(신부바위), 사모바위 구간이 특히 아름답다. 우뚝 솟은 바위와 푸른빛을 뿜어내는 주변의 나무들이 수면 위로 도장처럼 찍히는 모습이 압권이다. 그 길을 충청도 양반처럼 뒷짐을 지고 소요하듯 느릿느릿 걷는 즐거움이 각별하다.
가을날 황금은행나무터널로 유명한 문광저수지. 이맘때의 초록빛 풍경도 이에 못지않게 아름답다.

가을날 황금은행나무터널로 유명한 문광저수지. 이맘때의 초록빛 풍경도 이에 못지않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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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이옛길과 충청도 양반길 인근에 있는 문광저수지(양곡저수지)도 가보자. 황금빛으로 곱게 물든 은행나무길로 유명하지만 초여름 신록으로 물든 아름다움도 가을 못지않다. 호숫가를 따라 길게 이어진 은행나무와 물에 잠긴 나무들은 청송 주산지를 연상시킨다. 이른 새벽 물안개라도 피어오르면 마치 선계에 와 있는 듯 몽환적인 풍광이 장관이다.

500m 거리의 '은행나무 터널'로 들어서면 시각에 압도당한다. 햇살을 몸에 담은 초록빛 나뭇잎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길섶 벤치마다 어깨를 맞댄 연인들이 밀어를 속사인다. 수변의 강태공은 나무 그늘 아래 낚싯대를 드리운 채 여름을 맞고 있다.

괴산=글ㆍ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
괴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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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메모
▲가는길=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여주분기점까지 가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괴산나들목으로 나온다. 19번 국도를 따라 괴산읍내 쪽으로 가다, 괴강삼거리에서 좌회전해서 34번 국도에 오른다. 여기서부터 '산막이옛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안성분기점에서 평택~제천 간 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대소 갈림목에서 중부고속도로를 탄다. 증평나들목을 나가 510번 지방도로와 34번 국도를 타면 괴산군에 닿는다.

▲볼거리='아홉 풍경'을 거느린 이름난 계곡이 제법 많다. 백두대간 산자락마다 풍광 좋은 '구곡(九曲)'을 품고 있다. 화양계곡, 선유계곡, 쌍곡계곡, 갈은계곡, 연하계곡, 고산계곡, 풍계계곡 등이 유명하다. 각연사와 공림사 등 절집 여행도 좋고 수옥폭포의 아름다움도 빼놓을 수 없다.

▲먹거리=산막이옛길 인근의 맛집이라면 '괴강매운탕'(043-832-2974)이 첫손에 꼽힌다. 빠가사리와 쏘가리, 잡고기 매운탕 등을 낸다. 인근의 괴산매운탕(043-832-2838)도 쌍벽을 이루는 맛집이다. 괴산의 이름난 먹을거리로는 단연 올갱이 해장국이다. 괴강에서 잡은 다슬기(올갱이)로 끓여낸 해장국인데 시외버스터미널 주변에 맛집들이 몰려 있다. 이 중 할머니네 맛식당(043-833-1580)은 허영만의 만화 식객에도 나온 곳. 올갱이 해장국과 올갱이 무침이 메뉴의 전부다. 서울식당(043-832-2135)과 기사식당(043-833-5794)도 잘 알려져 있다.
옛길에선 심심찮게 다람쥐를 만날 수 있다. 맛나게 먹이를 먹고 있는 다람쥐.

옛길에선 심심찮게 다람쥐를 만날 수 있다. 맛나게 먹이를 먹고 있는 다람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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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봉 등산로에서 마주한 사오랭마을 들녘.

등산봉 등산로에서 마주한 사오랭마을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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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저수지에 잠긴 나무들이 이색적이다.

문광저수지에 잠긴 나무들이 이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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