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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관찰이라는 이름의 ‘창살없는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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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감옥, 인권침해 사각지대…법원 “예방조치, 형벌과는 달라야” 일침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법에 의한 형량을 마친 이후에도 ‘감시의 굴레’를 안고 사는 이들이 있다. 본인 마음대로 여행을 떠날 수도, 이사를 할 수도 없는 이들이다. 그들의 삶은 경찰서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돼 있다.

교도소와는 또 다른 ‘현실의 감옥’이 존재하는 셈이다. 주인공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뒤 보안관찰처분을 받은 이들이다.
11일 천주교인권위원회에 따르면 2000여명의 보안관찰처분대상자와 40여명의 피보안관찰자가 감시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보안관찰법 제18조(신고사항)를 보면 3개월마다 주요활동 사항을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주거지를 이전하거나 국외여행, 10일 이상 여행을 할 때도 경찰서장에게 사전에 신고하도록 돼 있다. 이것은 의무 사항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보안관찰 관련 실태조사를 발표하면서 “신고 사항이 매우 광범위하고 특정되지 않음으로 인해 양심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여행의 자유, 광범위한 사생활 침해가 일어나고 있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마음대로 누구를 만날 수도, 편하게 술잔을 기울이는 것도 어렵다. 술잔을 나누는 당사자를 경찰에 고스란히 보고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보안관찰’ 처분을 내리는 이유는 재범을 방지하겠다는 목적이다.

과거 국가보안법 등 시국사건에 연루된 이들이 다시 사건을 일으킬 수 없도록 방지한다는 목적이지만, 보안관찰은 갱신이 가능하고 횟수 제한도 없다. 이론적으로 보면 정해진 형량을 마친 후 평생 동안 또 다른 감옥에서 살아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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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격동의 현대사를 경험했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수많은 시국사범이 생겨났다. 국가보안법 위반 문제로 감옥을 경험한 이들도 적지 않다. 한 번 찍힌(?) 이들은 평생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주변의 눈초리뿐만이 아니다. 보안관찰법에 의해 감시받는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2004년 ‘야생초 편지’라는 책으로 유명한 황모씨가 보안관찰처분기간갱신결정 취소 소송에서 승소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외부에서는 베스트셀러 작가였지만 개인적으로는 거주이전 자유가 제한된 삶을 사는 보안관찰처분 대상자였던 것이다.

당시 재판부는 “보안관찰 처분을 하거나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대상자가 해당 범죄를 다시 범할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이유가 필요하다”면서 관행적인 보안관찰 기간 연장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국의 보안관찰법은 아시아인권위원회로부터 대표적인 악법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아시아인권위원회는 “한국의 보안관찰법은 법무부 장관의 행정적인 결정으로 정당한 사법적인 절차 없이 보안관찰 기간을 무한대로 연장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야생초편지 작가의 보안관찰처분이 여론의 시선을 모을 때만 해도 뭔가 대책이 마련될 것이란 관측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관행처럼 이어져온 보안관찰 문제점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바뀌지 않은 모습이다.

대법원은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징역 4년6월을 받고 복역하다 ‘특별사면’을 받은 김모(50)씨가 낸 보안관찰처분기간갱신결정 취소 소송에서 김씨 손을 들어준 원심을 4월30일 확정했다.

김씨는 2003년 출소했지만, 2007년 법무부 보안관찰심의위원회에서 보안관찰 처분을 받았다. 그는 2009년, 2011년, 2013년 등 2년마다 보안관찰 기간이 연장되자 소송을 냈다. 서울고법 행정1부는 지난해 12월 “보안관찰은 예방조치로 행정작용이라는 점에서 형벌과는 그 본질을 달리하는 것”이라며 보안관찰 연장 취소 판결을 내렸다.

인권단체들은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여전히 바뀌지 않은 보안관찰의 관행에 우려를 표명했다. 천주교인권위는 지난 1월 보안관찰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천주교인권위는 “보안관찰법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철창이자 엄청난 감시권력”이라며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을 파괴하고 있는 보안관찰법에 대해 헌재가 위헌 결정을 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법은 시대를 반영해 변화한다. 보안관찰법이 시대에 맞는 법인지, 낡은 이념 시대의 산물은 아닌지 찬찬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법원이 법무부 관행에 일침을 놓는 이유가 무엇인지 근본원인을 살펴본다면 생산적인 논의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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